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친절들.
이러한 원칙하에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2018년을 끝으로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었고, 그사이 우리나라 여권은 녹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출입국심사도 간단해져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와 반비례로 나의 체력과 기분은 이전의 그 어떤 여행에서보다도 바닥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라는 말이 나를 한층 더 날이 서게 했다.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니 주적주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리야, 안녕? 네가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다음날이 되었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몇 주 전부터 고민해 온 코디대로 입고 나갔다. 날이 조금 쌀쌀했지만 견딜 만했다. 사진을 찍어서 AI에게 물어보니 프렌치클래식 무드의 코디란다. '으흠, 파리지엔느 같군.' 장난스럽게 턱을 추켜올려 봤다. AI는 작은 장점도 놓치지 않고, 멋진 말로 칭찬해 주는 자존감 제조기다. 하지만 소매치기가 두려웠던 나는 원피스 속에 복대를 두르고 나왔다. 이것이 원인이었을까? 일행 분들이 날 오해하게 된...
마음을 꽁꽁 닫고 온 나와 달리, 일행 분들은 참 친절하셨다. 원피스를 입고 있는 내가 춥지는 않은지, 걱정해 주셨고, 결국은 다리에 덧입으라고 워머까지 주셨다. 나는 나름 완벽히 계산된 코디를 하고 온 거라서 이 옷차림에 워머를 덧신으면 코디 콘셉트가 망가지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처음 보는 나를, 걱정해 주시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양말 위에 워머를 덧신었다. ‘흐음, 이제 파리지엔느는 아니야.’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중년인데도 코디 걱정하는 나였다.
현지 날씨를 검색해 가며 많이 준비하고 왔는데도, 생각보다 날이 추웠다. 에펠탑을 보기 위해 센강 유람선을 탔을 때는 담요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일행 분이 ‘아이고, 날이 추워서 담요를 둘렀군요. 추워서 어떻게 해요?’ 하고 걱정해 주셨다. 나의 마음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졌다. 그렇게 센강 유람선 투어가 시작되었다.
저 멀리 돌계단에 앉아서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정확히는 우리 유람선 사람들) 손을 흔들어 주는 현지인, 또는 관광객. 답례로 같이 흔들어주는 우리 유람선 사람들. 지금 이 순간만 스쳐가는 사이인데,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 마음이 참 기특했다. ‘안녕? 당신 즐기고 있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라고 속으로 답례하며 나도 손을 흔들었다.
이 유람선 투어의 하이라이트 에펠탑이 보였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아, 언제부터 꿈꿔왔던 에펠탑인가! ‘안녕? 에펠탑, 약속을 지키러 왔어. 마법카드에서 본 너의 모습을 보러 내가 왔어!’라고 인사를 건넸다. 꽤 긴 시간 동안 둘러가며 에펠탑을 볼 수 있었지만, 내리기 직전 에펠탑을 감싼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반짝일 때의 그 순간은 평생 잊히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안녕, 에펠탑. 넌 참 아름답구나. 20년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네. 고마워.’
이렇게 하루 일정이 끝났다.
다음날,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음료를 내리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셔서 물었다. ‘혹시 임신했어요?’.............
아 이거였구나. 일행 분들이 그토록 나를 걱정하신 건 절대 소매치기당하지 않도록, 옷 안쪽에 꽁꽁 숨겨둔 내 복대로 인한 오해 때문이었던 건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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