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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다면 번호 교환을 할 거야

아, 흔들린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

by 커피중독자의하루

당연하게도 나는 임신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작은 오해로 인한 (오해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내 추측일 뿐이다.) 친절들은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일행들하고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특히 워머와 물을 나눠주셨던 분은 계속 마음이 쓰였다. 마지막 날이 되었고, 몇몇 분들이 번호교환을 하고 계셨다. 아, 나도 번호교환 할까 하고 망설여졌다. 하지만 아니야, 하지 말자. 원칙은 원칙이야, 흔들리면 안 돼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샤를 드 골 공항

그렇게 다들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계속 마음이 쓰였다. 아 이제 정말 못 보는 건가? 혹시 보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지? 카톡이라도 주고받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워머와 물을 주셨던 일행분이 다가왔다. 몽생미셸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었던 분으로, 나보다 9살 많은 50대 언니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업무와 병으로 지쳐 있던 내게 큰 위안이 된, 마음의 울림이 있는 대화였다. 비즈니스석에서 여기(이코노미석)까지 오신 거였다. 날 보러 오신 건지, 아픈 허리를 위한 운동 차원의 걷기를 위해 오신 건지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었다. 만약 번호교환을 하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계속 자던데요?”

“아, 전에도 지나가셨어요?”

실없는 안부만 나누고 그냥 보내드렸다. 이유는 용기 없음 반, 원칙은 지키자는 마음 반이었다. 그렇게 보내드리고 나서 든 생각은 한 번 더 만나면 그때는 꼭 번호를 물어봐야 지였다.


끝인 줄 알았던 만남은 인천공항에서 짐 찾는 동안 한 번 더 생겼다.

“안녕,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요.” 워머와 물을 주셨던 분이 한 번 더 인사를 건네셨다.

“네, 마지막이네요. 조심히 가세요.”

너 아까 한 번 더 만나면 번호 주기로 했잖아. 이제라도 뛰어가서 번호를 물어보자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짐을 찾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분이 생각났다. 조금 슬픈 것도 같았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금방 잊힐 거야, 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끝내 번호교환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처음으로 세워본 순응거부 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20~30대에 끝내는 이런 경계설정을 나는 중년인 지금에서야 시도하는데 그마저도 못 지킨다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는 나의 결심은 원점이 되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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