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편안한 당신
오랜만에 신랑이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3년쯤 전부터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내가 아프고 난 뒤로는 혼자 지내기 힘들어서 신랑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울의 병원과 우리 집 근처의 병원을 오가며 지냈다. 최근 3주는 집 근처 병원에 약을 타러 우리 집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어차피 3주 후에 약을 받으러 또 가야 하는데,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게 고됐기 때문이다.
이제 수술이 확정되어서, 이번에 신랑은 내일 약 타는 병원에 마지막으로 함께 가주고, 나를 다시 신랑집에 데려가기 위해서 우리 집에 왔다. (아쉽게도 루틴의 남자, 나의 아버지는 오늘 낮에 오빠가 모셔 갔다.)
온 김에 민생회복소비쿠폰을 활용해서 고기를 먹고자 했다. 실로 오랜만에 나가보는 외출이었다. 목살과 삼겹살을 먹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집에서 엄마가 삼겹살을 구워주신 적은 있어도 나가서 외식으로 사 먹은 적은 없었다. 20살이 좀 넘어서 처음으로 밖에서 삼겹살을 사 먹어 본 것 같다. 불판, 파절이, 기름장 등 집에서 먹던 것과 달라 어색해하며 고기를 먹고 있는데 같이 먹던 사람이
"너 삼겹살집 처음 와 봐?"라고 물어본 게 기억났다. 별 뜻 없이 물어봤을지도 모르지만, 썩 다정한 말투는 아니어서 조금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신랑은 다르다. 내가 어색해하거나 뭘 할 줄 몰라도 무안하지 않게 편안하게 대해준다.
예를 들면, 방금도 이 글을 쓰다가 노트북 화면 때문에 눈이 부셨다.
"여보, 여기 와서 앉아봐, 내가 화면을 흑백모드로 변경했는데도 눈이 너무 부셔."
군말 없이 바로 와서 노트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봐준다.
그냥 가볍게 얘기한 건데, 이렇게 바로 와줄 줄 몰라서 미안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여보, 한참 쉬고 있는데, 뭐 이런 것까지 다 들어줘?"라고 물어본다.
"허허, 내가 언제 안 들어준 적 있나?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런 것쯤.."
다 늦은 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핸드폰 삼매경이었으니 귀찮을 만도 한데 다 들어주는 것이다.
고마운 신랑.
루틴의 남자 아빠와 지내는 3주 동안도 행복했지만, 신랑과 지내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