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작년 7월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채,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하나 보기도 힘들 정도로 아프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 과장해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아프던 시간을 지나 약간의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을 때, 가장 힘든 일중 하나는 커피를 못 마시는 거였다. 그 당시 목디스크까지 왔었는데, 그때 만나게 된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에게서
"먹고 싶은 건 먹고살아야죠." 라며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 후 자주는 아니어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먹고 싶을 땐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작은 행복을 즐기곤 했다.
그러던 지난여름, 약간 회복했던 일상이 불볕더위에 의해 다시 주춤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가 너무 먹고 싶었던 나는 스타벅스 딜리버스에 눈을 돌렸다. '오호, 우리 동네도 배달 가능하군.' 기쁨에 겨워 과거에 좋아했던 돌체라테를 뒤로 한채, 디카페인 메뉴 중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디카페인 프렌치 바닐라 라테를 시켰다. 지난번에 우연히 한번 맛본 뒤로, 쓰면서도 진하고 달콤한 그 맛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쿠팡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사서 바나나 우유를 넣고 비슷하게 만들어서 먹어봤지만 스타벅스에서 먹었던 그 씁쓸하고 진한 맛은 도무지 흉내 내지가 않아서 직접 나가서 커피를 사 오다가 통증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뒤로 한 선택이었다. 배달비 3천 원이 좀 비싸긴 했지만 맨날 그러는 건 아니니까라고 위안하며 주문을 했다. 그 당시 그 메뉴에 몹시 반한 상태였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커피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원래라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지만 왠지 스타벅스 배달 관련인 것 같아서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배달기사인데요. ㅇㅇㅇ아파트 사시죠? 동호수가 어떻게 되죠? 자녀분이 'ㅇㅇㅇㅇ'으로(내 스타벅스 닉네임) 스타벅스 배달을 시킨 거 같은데 동호수가 누락돼서요."
응? 자녀라고?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맥락상 중요한 건 동호수가 누락되었다는 것이므로 더 묻지 않고 동호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참고로 나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처음엔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당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나의 커피가 배달되었다. 배달된 커피는 여전히 씁쓸하고 달콤한 내가 푹 빠져있던 그 맛이었지만, 평소와 달리 나는 그 맛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분명 자녀라고 했는데 왜 갑자기 자녀얘기를 하는 거지? 아, 맞다. 자녀가 시킨 거 같다고 했었지. 근데 왜 자녀가 시켰다고 생각한 거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엠비티아이 N 유형답게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나는 누군가에게는 - 예를 들면 내 남편 같은 사람, 내 남편이었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전혀 궁금해하지 않은 채 넘어갔을 것이다. - 사소할 수도 있는 그 일이 몹시 궁금했다. 음, 동호수를 누락해서 어린 자녀가 시킨 것인 줄 알았나? 음, 아니면 닉네임 때문 인가?
커피 한잔을 다 마실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닉네임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를 나는 2가지로 추론했는데,
첫 번째, 40대 이상은 닉네임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 본명 대신 별칭을 사용하는 건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문화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즉, 닉네임으로 주문하는 것 자체가 '어른의 주문'이 아닐 거라는 무의식적인 판단을 했거나
두 번째, 닉네임이 너무 어려 보여서: 내 스타벅스 닉네임'ㅇㅇㅇㅇ'에서 10~20대의 느낌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스타벅스 닉네임을 적어도 10년 전에는 만들었을 테니 조금 어린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때는 20대 초중반 시절, 또래들끼리 모임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이 이쁘다고 하자, 별로 친하지 않던 한 또래애가 'ㅇㅇ이는 지금은 이쁜데, 나중에 나이 들어서 관공서나 병원 같은 곳 갔을 때, ㅇㅇㅇ할머님~ 이러면 이상하잖아'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위의 두 사례 모두 편견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감수성의 것들을 좋아할 수 있다. 또 할머니가 젊은 스타일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작고 여린 아기였고, 빛나고 아름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처음부터 중년이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에 가졌던 젊은 감수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될 수 있다.
'먹고 싶은 건 먹고살아야죠'라고 말했던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도 된다. 설령 그것이 나이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 모두 편견에서 벗어나 취향을 누리며 살아도 된다. 젊은 스타일의 이름을 가진 채로, 젊은 감수성의 닉네임을 사용하여 달콤하고 씁쓸한 디카페인 커피를 시켜 마시는 것. 그것이 나의 취향이라면 20대도, 40대도, 70대도 모두가 해도 된다. 그것이 자신을 온전히 돌보고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