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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동일하게 사랑해

진심은 시간과 거리를 초월한다.

by 커피중독자의하루

지난 화에 사랑스럽지만 상식 밖의 행동으로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나의 강아지 '하루'에 대해 소개를 했다. 3~4개월쯤 되었을까 그 시절의 하루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자거나, 그릇에 코를 박고 촵촵촵하며 사료를 먹거나 종이를 찢거나 실타래를 물고 놀거나 하며 일과를 보냈다. 어느 날 개통령인 강형욱 님이 산책 훈련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영상을 보고, 아직 아기이던 하루의 산책 훈련을 시작했다. 리드 줄 대신 집에 있던 면 끈을 아주 가볍게 묶어 밖으로 데리고 나갔지만, 하루는 '산책'이라는 개념조차 없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하루는 금방 산책을 사랑하는 산책 마니아가 되었다. 어찌나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제일 좋아하는 간식 먹다가도 '(산책) 가자'라는 단어를 말하면 먹던 걸 내동댕이치고 뛰어 오곤 했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하루는 금세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때마다 꼭 내 무릎을 베고 자고 싶어 해서 내가 무릎을 내어줄 때까지 빤히 날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면 이번에는 터그놀이를 하자고 모든 장난감을 번갈아 가며 물고 왔다. 그러면 나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칠 때까지 계속해 줘야 했다.

산책 시 기뻐하는 모습
산책가잔 소리에 기뻐하는 모습
천사같이 잠든 모습
터그놀이 중
함께 놀자는 하루의 모습들

'아빠 기다림 의식'의 시작

그러던 어느 날, 하루가 나랑 놀다 말고 갑자기 중문 앞으로 뛰어가더니 앉아서 문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루야 갑자기 왜 그래? 왜 거기 있어? 이리 와" 하고 불러보아도, 슬쩍 한번 쳐다만 볼 뿐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삼십 분쯤 지났을까? 아니 한 시간쯤?

인터폰에서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신랑 차량이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방송이었다. 하루는 매일 일정 시간대가 되면 차량 도착 알림 소리가 나고, 그러면 아빠가 돌아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하루가 '아빠 기다림 의식'을 시작한 첫 순간이었다.


상식 밖의 기다림

하루와 신랑, 내가 함께 하는 일상이 2~3년쯤 되었을 때, 신랑이 제주도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신랑은 떠나기 전 하루를 품에 안고

"하루야, 아빠 갔다 올게."라고 약속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건 우리와 하루만의 약속언어였다. 우리는 하루의 훈련을 위해 몇 가지 언어들을 가르쳤는데, 예를 들어 산책을 가려고 할 때는 '가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외에도 '기다려', '손' 등이 있다.


'갔다 올게'는 우리 부부가 외출 시, 하루가 불리불안 증세를 보이지 않도록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정한 언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만 두고 집을 떠날 때면 출근할 때든, 간단한 외출을 할 때든 늘 똑같이 저 말을 해서 하루에게 '우리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신랑이 제주로 떠나는 그날도 우리는 하루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며,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인 '갔다 올게'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아빠가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되었지만 종종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빠와 함께

하지만 그날부터 하루의 기다림은 상식 밖이 되었다. 신랑이 퇴근할 무렵을 훌쩍 지나고, 심지어 밤 12시가 되어도 중문 앞에 그대로 있었다.


"하루야, 이제 아빠 그 시간에 안 와. 가끔만 만날 수 있어. 이리 와서 엄마랑 놀자." 하며 간식 봉지를 흔들어 보여도 하루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엄마, 아직 아빠가 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아직 오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하루

하루는 그 작은 머리로 '아빠가 야근으로 종종 늦게 왔을 때처럼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행히 아침이 되면 내게 돌아와 일상을 보냈지만, 신랑 퇴근 시간대가 되면 어김없이 기다림을 시작했다. 말이 통하면 설명해 줄 텐데, 아빠가 하루를 버린 거라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아팠다. 그런 기다림의 날들이 계속되고, 몇 주 만에 신랑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하루는 중문 앞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이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하루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꺽꺽대며 빙글빙글 돌고 이리저리 전력질주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만약 내가 하루의 상황이었다면 하루 이틀이나 길어도 일주일 정도 기다리다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의 진심은 내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빠 옆에 앉아서 좋아하는 모습
즐거운 시간들

결론: 진심은 바래지 않는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신랑과 떨어져 지내다가, 나의 병으로 인해 다시 셋이 함께 살게 되었다.

하루는 여전히 나와 신랑이 30초 만에 화장실에서 돌아와도, 몇 시간을 외출했다가 돌아와도 동일하게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돌고 뛴다. 다만 몇 박 이상 떨어졌다가 만났을 때만, 주 만에 신랑을 만났을 때처럼 숨을 못 쉬는 등 평소보다 아주 살짝 반김의 강도가 높아진다.

오늘도 하루는 30초 전에 본 나를 보고 그렇게나 반가워한다.

언제나 날 사랑해 주는 그 녀석

"하루야, 엄마 30초 전에 봤는데도 그렇게 반가워?"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하루는 여전히 빙글빙글 돌며 웃는 표정으로 내게 안긴다. 길게 떨어져 있든, 짧게 떨어져 있든, 하루에게는 언제나 동일하게 반갑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나와 신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동일한 사랑을 품고 우리를 기다린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속담처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또, 자주 본다면 무뎌져 소중함을 잊고 살기도 하는데 하루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하루를 보며 '진심은 시간과 거리를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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