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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주어도 아깝지 않아

전 재산을 다 준 하루

by 커피중독자의하루

몇 년 전, 코로나에 걸렸을 때의 일이다.

그때쯤 코로나에 걸렸던 직장동료들은 거의 아프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심하게 아팠다. 코로나가 낫고 나서도, 몇 달간은 가슴이 콕콕 쑤실 정도였으니까.

강아지 운동장에서.
하루와 뒤 따르는 친구.
강아지 운동장에서 신난 하루
강아지 운동장에서 쉬는 하루.
아빠와 함께, 녹색 스카프 맨 강아지가 하루.
실내 운동장에서는 기저귀.
강아지 운동장에서 다정하게.
사랑하는 파란 공
아끼는 파란 공 두고, 친구와 신경 전. 엉덩이 보이는 쪽이 하루.
강아지 운동장에서 공놀이.

어느 금요일, 나를 포함한 직원 셋이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생선 미역국이었다. 직원들과 밥을 먹은 다음 날 몸이 좀 안 좋았지만, 하루를 위해 강아지 운동장에 갔다. 그때, 전날 같이 밥 먹었던 동료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 나도 급히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대기인원이 무척 많았고,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밖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열이 오르며 어질어질해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검사 결과는 코로나 확진이었다. 다행히 함께 있던 신랑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그 즉시로 셀프격리에 들어갔다. 하필 그 당시 부모님이 우리 집에 몇 주 머물고 계셨는데, 연로하신 두 분께 코로나를 옮길까 봐 오빠가 급히 두 분을 모셔갔다. (부모님은 아픈 나를 돌봐주셔야 한다며, 안 가려고 하셨지만 오빠가 두 분까지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더 힘들다고 설득해서 마지못해 따라가셨다.)


고통 속 격리

격리기간 동안 회사를 못 가는 건 당연하고, 집에서도 신랑에게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내 방에서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때쯤 야근에 시달리던 동료들이 우스개 소리로 '코로나에 걸려서 일주일 쉬었으면 좋겠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그때 동의하지 않았지만,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는 더더욱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파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에는 신랑이 죽을 문 앞에 가져다 두었다. 하지만 아프고 힘들어서 먹기가 싫었다. 아픈데 혼자 격리돼서 있으니 좀 서러웠다. 다른 병이었으면 가족들이 옆에서 간호를 해주었을 텐데, 이건 전염병이라 그럴 수가 없으니. 하지만 옆에서 간호해 줄 수 없는 게 당연하고, 또 그렇게 해야 옳은 일이었다. 이렇게 모든 가족이 나와의 격리에 동참했지만, 딱 한 가족만은 격리에 동참하지 않았다. 바로 작고 여린 우리 강아지 하루.


장난감과 즐거운 한 때.


격리를 거부한 하루

평소에 우리는 하루가 모든 방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지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 내가 누워있는 그 방만은 꽉 닫아두었다. 하지만 하루는 그걸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있는 방 앞에 와서 문을 발로 긁고, 끼이이잉 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오려고 했다. 그때마다 신랑이 하루를 안아서 데리고 갔다. 그러면 하루는 어디 나쁜 곳에라도 끌려가듯

"깨에에에에엥-"하고 소리를 냈다. 그리고 금세 문 앞으로 다시 와 구슬픈 '끙끙'소리를 내며 방문을 긁었다. 그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때쯤 이종 간에도 전염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하루의 투정을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을까? 식사 그릇을 다시 밖으로 내어 놓으려고 문을 열었던 그때, 하루가 재빠르게 뛰어들어와 내게 안겼다. '아, 우리 하루 옮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와줘서 고마운 상반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내 보내려고 했으나 이미 나와 접촉했고, 또 벌써 여러 번 울부짖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터라 '그래 이종 간의 전염 사례는 아직 검증된 바 없으니 그냥 두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루는 나와의 격리를 무산시키고 코로나확진 기간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이때부터는 하루가 배변패드에 갈 수 있도록 내 방문도 살짝 열어 두었다.)


전 재산을 다 준 하루

아픈 와중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면 하루는 내 머리 위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하루 엉덩이 온기는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그 따뜻함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부산스럽고 놀기 좋아하던 개춘기 강아지가 꼼짝도 하지 않고 내 곁을 지킨 것이다. 또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보니, 하루의 모든 장난감들이 내 머리맡에 쌓아져 있었다. 내 머리 위에 올려 둔 모양인데 그것이 흘러내려서 바닥에 쌓아진 것 같았다. 하루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 애착 방석, 파란 공, 빨간색 실로 된 실타래, 노란색 오리인형, 분홍색 오리인형.... 모두 다 내 머리맡에 쌓여 있었다.

평소 이렇게 내 머리 위에 앉는 하루, 코로나 확진 기간 내내 이렇게 있어 주었다.

하루가 장난감을 물어와 내 머리에 올려놓는 건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었다. 이렇게 전부는 아니고 한번 물어올 때마다 한두 개 정도씩. 그래서 그 이게 무슨 행동인가 하고 인터넷을 찾아봤었다. 검색 결과 강아지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인간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따라서 강아지에게 장난감은 가장 큰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무척 소중한 물건이고, 이것을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드릴게요"라는 의미이며,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했다.

즉, 하루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때 정말 행복했고, 그걸 나에게 주면 아파서 누워있는 나도 다시 행복하고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였다.


정말 감동이었다. 아파서 마음이 약해진 상태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옮는 병이라는 걸 몰라서, 또 옮고 나면 하루 자신이 많이 아프다는 걸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소중한 걸 전부 다 줄 테니, 아프지 말아 줘.'라는 그 마음만은 진짜였을 것이다.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금괴나 아파트와 같은 정도로 소중한 장난감을 아낌없이 전부 다 내 머리에 쌓아놓은 것이 그 증거다.

노란 인형놀이
행복해♡
터그놀이
소중한 시간
너무나 행복한 공놀이.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

그렇다. 하루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

내가 무엇이기에 하루는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는 걸까?


퇴근이 늦어져서 피곤한 날에는, 하루가 그토록 좋아하는 산책을 건너뛰기도 했다. 온 집안을 다 어질러 놓으며, 부산하게 굴 때는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산책 후 또 터그놀이를 하자고 할 때는 내심 귀찮아하기도 했다.


'하루야, 그런 나인데도 너의 모든 것을 줄 만큼 날 사랑하는 거야?'


내가 어떤 태도로 대했건 아낌없이 나를 사랑하는 하루에게 미안했다. 한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밥 주니까 좋아하지"

맞는 말이다. 밥은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소중한 거니까. 그렇지만 밥을 준다고 해서, 다시 표현해서 나를 살려줬다고 해서 내 전재산을 그 사람에게 갖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죽고,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 말고 내가 살아서 건강한 시점에 말이다.)


장난감을 내 머리 위에 쌓아 놓는 하루의 이상한 행동에서 나는 또 참된 사랑을 배웠다. 가진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아 하는 것. 그게 하루식의 사랑방법이다.


나도 하루처럼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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