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을 사랑하는 꾸준함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나는 즐거워

by 커피중독자의하루

"하루야, 가자 가자."

이 말 한마디에 소파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하루의 눈이 동그래지고 동공이 커진다.

내게로 뛰어와 빙글빙글 돌고, 끙끙거리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좋아한다.

좀 전까지 내가 외출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나 혼자 나가는 것인지 하루도 같이 나가는 것인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하루였다. 전에는 하루 산책 시마다 입던 바지만 입어도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 바지를 입고도 하루는 그냥 두고 나만 나가는 경험을 몇 번 한 이후로

"가자 가자"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미리 좋아하지 않고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똑똑한 우리 하루^^

노란 하네스

하루가 요즘 즐겨 차고 있는 노란색 하네스를 꺼내자 이번에는 더욱더 좋아한다.

"끼아아앙에에에에엥."

소리와 함께 헐떡거리고,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 하며 내 다리를 두 발로 차기를 반복한다.

"하루야, 숨 넘어가겠다. 그렇게 끙끙거리면 목마르잖아. 진정하고 물 좀 마셔."

산책물병을 내밀어 물을 준다.

"꼴깍꼴깍꼴깍."

"거봐, 그렇게 숨넘어가게 좋아하니까 목이 마르지. 이제 진짜 가자."

하고 리드줄을 끌고 밖으로 나온다.

엉덩이 승천한 하루

하루의 엉덩이는 하늘로 날아갈 듯 승천해 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뒷모습이지만 뒷모습만 봐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느껴진다.

"하루야, 우리 어제도 나갔다가 왔잖아. 누가 보면 몇 달 만에 산책하는 강아지인 줄 알겠네." 하고 웃어 보이자 하루도 웃는다. 물론 하루는 그저 산책이 즐거워서 웃은 것이다.

산책 중 가방에서 쉬는 하루.

매일 가는 산책인데 저렇게도 즐거울까 싶다. 그게 신기해서 신랑하고 그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여보 하루 좀 봐. 꼭 몇 달 만에 나온 애 같아. 어제 갔다 왔는데도 저렇게도 즐거울까? 항상 똑같이 저렇게 숨넘어가듯 좋아한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너무 좋은가 봐. 현기증이 날 만큼.^^(하루가 맨날 끼에에에엥 소리를 내며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 현기증이 난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하루는 늘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언제나 처음인 듯 똑같이 좋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탐 많은 하루.
사료 봉지 물어오는 하루.

하루는 벌써 5년째 똑같은 사료를 먹고 있다. 아기 때 눈물이 나서 한번 사료를 바꾼 이후, 쭉 그 사료만 먹고 있다. 그런데도 안 질려 하고 잘 먹는다. 아침이면 언제나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서 사료를 달라고 보챈다. 딱 한 번, 사료를 안 먹겠다고 단식 투쟁하던 시절이 있긴 했다. 7개월 때였나 그보다 어릴 때였나 아무튼 갑자기 웽! 하며 짖어대고 벽지 찢고 반항하던 개춘기 시절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유튜브에서 굶겨야 한다고 하는 영상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출근 전에 사료통에 딱 먹을 만큼 주고 안 주었다. 그마저도 안 먹겠다기에 사료를 치우고 출근하기를 몇 번. 그 뒤로는 사료만 보면 힝- 소리와 함께 빙글빙글 돌며 좋아한다.

예전 간식. 먹으라고 해도 아까워서 참는 하루♡, 춤추는 영상도 있는데 영상이 너무 많아서 잘 안 찾아지네요.^^

또 간식 취향도 한결같다. 우리는 외출할 때 하루에게 간식을 한두 알씩 주고 간다. 신랑이 그 간식을 산 지도 벌써 몇 달째인데, 그 간식통 흔드는 소리만 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나올 만큼 그 간식을 사랑한다. 하루는 원래도 식탐이 강한 아이였다. 강아지 관련 유튜브를 보았는데, 식탐이 강한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고 했다. 식탐이 높을수록 먹이에 대한 집중력이 강해서 훈련시키기가 편하다고 했다. 우리 하루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똑똑하다.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로 종종 서울대에 보내야 한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간식 한 알 꺼내면 뚫어지게 그것만 바라본다. 줄 때까지. 절대 자세도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줄 때까지 계속 바라본다. 그 정성이 갸륵하고 기특해서 한 알주고 나면

"냠냠, 꿀떡." 하고 맛있게도 받아먹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건강상 문제만 없다면) 계속 주고 싶다. 하지만 건강을 지켜줘야 하기에 4알까지가 정량이다. 외출할 때

"갔다 올게, 먹어"란 말과 한두 알.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 왔다"라는 말과 함께 착하게 잘 기다린 보상으로 한두 알 준다.

떡 물어 온 하루.
식탐 많은 하루.

어쩔 때는 우리가 외출 간다고 하면 시무룩해하는 대신, 간식 먹을 생각에 좋아서 빙글- 하고 한번, 빙글- 하고 두 번. 이렇게 돈다. 그러면 우리는

"뭐야, 왜 좋아하지? 아직 간식 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심 안심이 된다. '그래, 우리가 돌아올 걸 아는구나. 간식 먹을 생각에 기쁠 정도로 씩씩하게 잘 기다리는구나.' 하고.


이렇듯 하루는 모든 일상에 대하여 한결같이 즐거워하고, 한결같이 좋아한다.

잠깐 나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면 그걸 계속 먹는다. 예를 들면, 오이가 좋아졌을 때는 매 끼니마다 오이를 꼭 먹는다.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하지만 며칠 못 간다. 일주일을 못 넘기고 다음 음식으로 넘어간다. 오이를 먹다가 가지로 바꾸고 하는 건 나쁜 습관이 아니지만 어느 날은 갑자기 밥이 싫어져 치킨을 먹는다든지, 또 어느 날은 의사 선생님이 제일 나쁜 음식이라고 나에게 먹지 말라고 했던 피자를 먹는다는지 하는 식이다. 얼마 전에 다녔던 한의원에서도 모든 간식, 치킨과 피자는 물론이고 과일까지 다 끊고 단백질하고 탄수화물을 잘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열흘 정도 지키다가 포기했다.

또 사회 초년생 때는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일상이 지겨워서 친구에게 상담을 한 적도 있다.

"아,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직장, 어떻게 계속 다니지? 더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3년만 버텨봐. 3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어디든 갈 수 있대."

그 말 듣고, 3년을 꾹 참고 버텨서, 같은 일에 대한 경력자가 되고 그 경력으로 안정된 직장을 얻긴 했지만, 그동안에도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웠던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하루는? 하루는 어떻게 저렇게 어제 다녀온 산책을 오늘 또 간다는 소식에 그토록 기뻐하고 5년간 똑같은 사료를 먹으면서도 매일 눈을 반짝이며 날 깨우고, 매번 같은 간식에도 엉덩이 춤을 추고 기뻐할 수 있을까? 하루야말로 삶을 제대로 사랑하는 인생살이 고수인듯하다.


최근 나는 병에 걸리면서 일상을 잃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커피 한 잔이, 너무나 간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못 견디게 먹고 싶은 날은 디카페인 커피를 한잔 마시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먹고 나면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 몸이 나빠졌다. (한번 먹고 나면 며칠을 못 잔다던지 해서 결국에는 통증 악화로 이어진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하루의 삶에 대한 태도, 일상을 꾸준히 사랑하는 태도가 범상치 않게 느껴진다.

잃고 나서야 깨달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하루는 본능적으로 알고 매번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통하고 기특하다.

예전과 달라졌지만, 지금도 나의 일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 내게 허락된 이 일상을 하루처럼 즐거움으로 매번 기뻐하며 살아가고 싶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지난 금요일에 글 발행을 못 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부득이 한 회를 건너 뛰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