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진단받던 날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보다가 울었다. 옆에 있던 신랑이 깜짝 놀라서 쳐다본다.
"나도.. 나도.."
앞뒤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왔다. 드라마 전개상 이렇게까지 울만한 포인트가 없는데, 우니까 신랑이 당황해했다. 슬의생에서 고윤정이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걱정해 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병에 걸리기 전까지 의료진들이 그렇게까지 친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러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도 감동은 받긴 했지만 실제로 의료진들이 저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리고 나서는 실제 저럴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사연은 이렇다. 회사에 있다가 견딜 수 없이 아파서 급히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당장 쉬어야 한다고 하며 안정가료 2주 진단과 함께 각종 검사를 시켰다. 다음에 갔을 때는 더 심각한 얼굴로 3차 병원에 가보셔야 한다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3차 병원에 갔다. 또 각종 검사와 함께 MRI를 찍었다.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결과가 조금 안 좋아 보여서 그러니, 다른 과 의사 선생님한테 가봐야 한다고 하셨다.
"심각한 거예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래 보이긴 하는데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가보시라고 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낙관적이었다.
'병원에서는 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말하니까 막상 가보면 별거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다른 과 의사 선생님한테 갔다. 내가 질문했다.
"선생님, 별거 아니죠?"
아니었다. 결과는 진짜로 좋지 않았다. 여러 가지 서러움이 복합되어 눈물이 나왔다. 예의를 차리려 멈춰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가 잘못해서 생긴 병인가요? 제 생활방식이나 성격 때문에요?"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다.
"아닙니다."
그래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 탓인 것 같았다. 병의 원인은 아니어도 적어도 악화된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진정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울면서도 '아, 뒤에 대기자도 많은데 얼른 멈춰야 설명 듣고 나갈 텐데, 그래야 민폐를 안 끼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다. 내가 좀 진정되자 선생님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병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내가 미안해하자 괜찮다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와, 다음 예약을 잡으려고 기다리며 혼자 훌쩍이고 있었다. 누가 다가왔다.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환자분, 울지 마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후, 나는 그분들 기억에서 잊힌 줄 알았다. 많은 환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니까. 다시 방문했을 때, 그때 그 간호사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ㅇㅇㅇ님, 오늘은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이런 일을 겪은 이후, 드라마에서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님이 환자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때 일이 떠올라서다. 바쁜 와중에도 환자를 걱정해 주시는 의료진의 모습은 언제나 큰 위안이 된다.
목을 가다듬고, 신랑에게 말한다.
"나도, 선생님들이 저렇게 위로해 주셨어, 저거 진짜 있는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