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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모른대요

나를 놓아주지 않아

by 커피중독자의하루

처음 통증이 찾아오기 전, 그보다 약한 강도의 아픔이 연거푸 있었다. 때로는 몸살, 때로는 두통이었다. 그때마다 상사는

"ㅇㅇㅇ씨가 잘 아니 ㅇㅇㅇ씨가 이걸 알려주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이미 외출을 올려 결재까지 난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런 일이 너무 잦아서, 그분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몰래 나와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새로운 업무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그 업무를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나의 야근 횟수는 더 늘어났다. 야근 도중에도 상사는 나를 계속 부르셨다.

"ㅇㅇㅇ씨, 나 이것 좀 알려줘." 그걸 알려드리고 나면, 시간이 훅 지나가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더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아팠다. 하지만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 참았다.


그날도 상사와 회의 중이었다. 뭐라고 말씀하고 계셨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 겪는 통증이었다. 무서웠다. 이걸 참으면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상사한테 말씀드리고 급히 병원에 가려고 했다. 상사는 다녀오라고 하셨지만, 막상 가려고 일어서니 "이거 마감이 급해서 그러니 좀 알려주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

강한 통증이라 동네 병원 말고 좀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2차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지금 안 쉬면 그 고통 평생 달고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쉴 수 없어요. 회사에 가야 해요."라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안된다며 2주간의 안정가료 진단서를 주셨다. 병원을 나서려고 하는데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신랑도 타 지역에 살고 있어서 도와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병원 휴게 공간에 앉았다. 두세 시간쯤 흐르고 이러다가 집에 못 가겠다 싶어서 억지로 병원을 나섰다.

2주간의 병가 기간에도 나는 출근하거나 집에서 재택 피씨로 맡은 업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전에 했던 검사 결과를 듣고, 새로운 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상급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며 나를 3차 병원으로 보냈다.

3차 병원에서 심각한 병이라는 걸 알게 되고, '병에 의한 강제 쉼'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업무량은 많았고, 후임은 없었다. 나중에 후임이 구해지고도 나는 병으로 인한 강제 쉼을 바로 취할 수 없었다. 후임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균 8 정도의 통증을 참아내며, 인수인계 기간 동안 출근하여 업무를 알려줬지만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인수인계서와 (업무 순서대로 상세히 화면이 캡처된) 업무 매뉴얼 파일을 남겨놓았으니 보라고 했지만 봐도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해당 업무에 대해 알려주는 서비스 콜센터도 있었다. 나보다 4살 많은 후임은 인수인계가 끝난 후에도 계속 전화해서 업무를 모르겠다고 했다.


쉬고 있던 어느 날 밤, 아파서 간신히 잠든 순간 전화가 울렸다. 상사였다. 상사는 새로 온 후임이 업무를 할 줄 몰라서 본인이 대신 업무를 해주고 있다며, "내 직급에 이런 업무 할 처지는 아니잖아."라며 나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이후에도 후임은 수시로 연락해 왔다.그 시간 동안 나는 이 병이 발병하고 나서 지금까지 중 최고조의 고통을 겪었다. 그때가 병의 급성기였는데 쉬지를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쉼을 가질 수 있었다.

한동안 그런 생각을 했었다. 병의 급성기였을 때, 의사 선생님 말대로 충분히 쉬었다면, 모든 책임을 뒤로하고 그냥 쉬어버렸다면, 병이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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