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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네디언 할머니의 초대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by 커피중독자의하루

언니의 훈련 방식은 확고했다.

캐나다에 온 뒤로 난 늘 혼자 다녀야 했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여권 만드는 일은 나 혼자 갔어도 잘 해냈을 것이다. 거긴 한국이니까. 하지만 언니는 뒤바꿔서 한국에서는 함께 하고 외국에서는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영어도 잘 못하고 길도 모르는데 무섭다고 말하자 한국은 길이 복잡해서 어렵지만, 캐나다는 길이 복잡하지 않아 쉽다고 말했다. 한국은 말도 통하고 여차하면 전화하면 되지만, 여기는 말도 안 통하고 오로지 지도에만 의존해야 해서 어렵다고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한 캐나다 여행은 언니와 함께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관광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책을 읽거나 서예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언니의 방침에 따라 나는 혼자서 지도와 관광책자에 의지해서 돌아다녀야 했다.
조금 겁이 나서 며칠은 집 근처만 서성였다. 어차피 이 땅의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고 여행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집 밖을 나서 걷다 보니 큰 건물이 나왔다.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에 손가락을 붕대로 엄청 크게 싸맨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행 전의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는데, 짧은 영어로 "왜 그래요? 다쳤어요?" 하고 물어봤다.

아, 외로움이란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게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티도 벗지 못한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였기에,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건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을 때였다.) 갑자기 지난화의 비행기에서 만난 옆자리 아저씨가 떠오른다. 자꾸 나한테 말 걸던 게 애정 어린 참견이 아니라, 혹시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건가?^^


그 사람은 전기톱에 베였다고 얘기해 주었다. (혹시 내가 잘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다.) 거기서 나와, 조금 더 걸으니 민들레홀씨가 가득한 공원이 나왔다. 나는 그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았다. 백발의 고운 할머니가 지나가시다가

"걸."이라며 나를 부르셨다. 어디서 왔냐 사는 곳이 어디냐 이런 대화들이 오갔고 나에게 같이 차 마시러 집에 가겠냐고 물으셨다. 별 망설임도 없이 그 집에 따라갔다. 할머니는 백발에 흰 블라우스, 파스텔톤 주름치마를 입고 계셨는데, 할머니와 꼭 닮은 예쁜 꽃무늬 찻잔에 홍차와 비스킷을 주셨다. 비스킷과 홍차의 조화는 정말 최고였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홍차홀릭에 빠졌다.


손가락 붕대아저씨와의 대화와 할머니의 초대는 내 가슴속에 무언가가 몽글몽글 솟아나게 했는데, 그것은 자신감과 용기였다. '아, 그래, 이곳도 그렇게 무서운 곳만은 아니구나.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도 물어보면 대답도 해주고, 나를 환대해주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캐네디언 할머니와의 일은 더욱 가슴에 깊게 새겨지는 좋은 추억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홈익스체인지를 해서 미국에 온 케이트 윈슬릿이 운동하러 나갔다가 옆집 할아버지를 만나고, 후에 할아버지 집에 초대도 받고, 친구가 되어 조언도 얻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캐나다에서 만난 이 할머니와의 일이 오버랩 됐다. 어리숙한 시골아가씨를 거리낌 없이 집에 초대해 주시던 할머니. 할머니와 만남은 외롭고 두려웠던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마치 옆집 할아버지가 케이트 윈슬릿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도 하나 들고, 박물관을 찾았다가 못 찾고 헤맬 때 친절히 길을 알려주던 키 크고 얼굴이 하얗던 세련된 중국인 언니도 생각난다. 한국인인 줄 알고 급히 길을 물었는데 중국인이었다. 무슨 박물관인지는 기억 안 나고 사람만 기억나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여행에서 사람과의 추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남은 여정에서 나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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