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버린 마무리
테슬라에서의 인턴십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한국에 돌아온 지도 몇 주가 지났다.
그렇다. 글을 안 쓴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턴십이 끝난 직후, Mountain View의 구글 클라우드 오피스를 방문했다. 저번 학기에 졸업한 친한 형이 일하고 있다. 구글 색깔로 도배된 자전거를 보기도 하고, 테슬라보다 훨씬 맛있는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복지가 장난 아니더라. 완전 MZ 한 대학교 캠퍼스를 보는 기분이었다. 창의력이 샘솟는달까.
내가 있던 테슬라 오피스는 2층짜리의 건조한 건물이다. 건물의 절반은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공장이고, 그 다른 절반은 책상과 모니터가 빼곡히 자리 앉아있다. 몇 섹션마다 정수기와 작은 스낵바가 있다. 스낵바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실상은 커피머신 두 대와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자판기 하나뿐이다.
구글 건물들은 매층마다 카페, 도서관 형태의 라운지, 거대한 스낵바가 있다. 스낵바에는 각양각색의 과자, 음료수, 심지어는 프로틴 셰이크가 무료로 제공된다. 구글 오피스를 가기 전에만 해도 테슬라 스낵바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테슬라 직원들은 불평불만 없이 회사를 다녔나 싶기도 하다.
다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뉴욕이었다. 자취하는 친한 형 집에서 지내며, 같이 뉴저지에서 열린 지드래곤 콘서트를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도 만났다. 올해에만 세 번째 방문이라 특별한 관광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여행의 전부였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학교였다. 올해 10월 말에 군입대가 예정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입대날이 잡혀있다. 개강 시기에 맞춰 돌아가니, 이제 3학년이 된 캠퍼스는 신입생 때의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느껴졌다. 여름 전에 맡겨둔 짐도 챙기고, 휴학 신청도 했다. 무엇보다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잡고, 밤에는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머무른 일주일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개강 첫날 다들 수업을 가고, 학교 생활 얘기를 옆에서 엿듣다 보면 정말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함, 이상함, 신기함, 재미, 부러움, 질투심 등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뒤죽박죽 섞인다.
즐거웠던 일상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 줄이야.
이 글의 본래 목적은 테슬라 인턴십에 대한 마지막 회고였다. 문제는 막상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 써둔 글들을 복기하다 보면 얼개가 잡히겠지만,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건 몇 가지뿐이다.
내가 맡았던 메인 프로젝트와 업무들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팀 규모
미팅의 빈도와 방식
인턴십 평가
적어보니까 사실 이게 전부인 것 같다. 다 기억나는 걸 지도.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한 기억은 사람들이다. 팀의 분위기가 선명히 남아 있다. 나와 계약직 개발자 한 분을 제외하면 모두가 가족이 있었다.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었다. 인턴십 초반에는 엔지니어링 매니저의 아내가 출산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퇴근을 최대한 5시에 맞추고,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팀이 여러 오피스에 나뉘어 있었기에 팀 런치는 딱 한 번 뿐이었다. 점심은 각자 해결했고, 미팅 중에는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 얘기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퇴근 후에 따로 연락하거나 어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다소 차갑고 건조한 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매우 친절했다. 커피챗을 할 때면 내 학교 생활을 물어보거나, 유학과 여행에 대해 얘기해 주기도 했다. 메시지 하나를 주고받을 때에도 존중이 묻어났다. 특히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계약직 개발자 분은 늘 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차분한 톤으로 늘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고, 내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다양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덕분에 내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테슬라에서 일하면서 어떤 코드를 쓰고, 어떤 새로운 기술과 테크닉을 배웠는지는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군대를 가게 되면 코딩 자체를 잊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벌써 잊었다. 한국에서 와서 매일 같이 게임(롤토체스)밖에 안 하기 때문)
결국 내게 오래 남은 건 사람들이다. 뉴욕에서 일하는 형, 학교 친구들, 동기와 선후배들, 그리고 테슬라에서 만난 소중한 동료와 멘토들. 특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 지난 2년 동안 이렇게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더 기쁘고 뿌듯하다.
입대 전 한 달 동안에도 한국 친구들, 군대 먼저 간 대학 동기들, 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