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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민원인 08화

민원인 ep.8 기존 건축물 해체 공사

by Celloglass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 붕괴 사고 이후, 일정 규모 이상의 기존 건축물은 신고 또는 허가 절차를 거친 뒤에야 철거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허가 대상의 경우 지자체 심의까지 받아야 하므로 철거에는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철거 과정에는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한 해체공사 감리자가 반드시 참여한다. 기존의 일반 감리와 달리, 해체공사 감리는 전문 교육과 자격 검증을 거쳐야만 맡을 수 있다. 일주일간 35시간의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해 선발되며, 이후에는 보수교육을 통해 자격을 유지한다.


사실 과거에도 철거 공사에 감리는 있었다. 그러나 인명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교육 제도를 마련해 자격을 부여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문제다. 말하자면, 그전에는 교육도 없었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방식은 늘 같다. 사고가 발생하면 법을 강화하고 처벌 규정을 신설한다. 그렇게 정치인과 관료들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책임을 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사전에 예방할 방법을 찾지 않는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예산 배정이 어렵다는 이유일까, 아니면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결국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추후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말하지 않았냐.”

“내 그럴 줄 알았다.”

결과가 드러난 뒤에야 목소리를 높이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은 감리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안전 관리의 주체가 감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한은 불분명한 채 책임만 강제하려 한다.


문제는 감리자들이 사업소득자라는 점이다. 법으로 강제만 할 뿐, 그들에게 실질적 이익은 제공되지 않는다. 책임만 늘려놓고 “적절한 조치를 했다.”라고 믿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건축사들은 감리 업무를 점점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감리를 하지 않는 건축사’가 등장했으며, 최근 흐름은 정부가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건축사 입장에서는 감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계약 구조상 설계와 감리 업무는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소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감리라는 업종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공감리제.

정기적인 훈련과 교육, 그리고 정당한 보상을 국가가 보장하면 된다. 이미 허가권자 지정감리제와 감리비 예치 제도가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최소한 신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분양받은 개인이 직접 사전 점검을 하고, 문제 발생 시 분통을 터뜨려야 하는가. 구청은 “민간 사안이라 관여할 수 없다”라고 하고, 시행사는 “배 째라”는 식이다. 개인 간 문제로 떠넘기는 방식이 과연 옳은가.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사회적 반향이 크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인가. 혹시 사고가 나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구조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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