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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민원인 02화

민원인 ep.2

독심술

by Celloglass

설계를 의뢰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건,
수많은 법규와 기준에 맞춰 정리하는 일이다.


인테리어와는 다르다.


건축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주차장법. 소방법.

수도 없이 많은 기준과 예외.


설계는 결국

그 법들 위에 쌓이는 구조다.


계획안이 정리되면
심의 접수를 위해 관할 건축과 담당자와 통화를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똑같다.


“그냥 접수하시면 돼요.”


그 말,
우린 안다.


그냥 접수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방문 일정을 조율한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으면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그리고, 역시나.
현장에서 처음 듣는 규정이 툭 튀어나온다.


“원래부터 있었던 거예요.”
“작년부터 적용됐어요.”

“저희 내부 운영 기준입니다.”


홈페이지엔 없고,

지침서에도 없는 각종 규정들.


하지만 어김없이

‘원래 그랬다’고 말한다.


답답하다.
화도 난다.

특히 이전에 수차례 통화로 확인한 내용이


"그건 잘못 알고 계셨네요"로 번복될 때.


“올해 초에 담당자가 바뀌어서요.”
“제가 그런 말씀드렸을 리가요?”


변명은 일관되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통화 녹취는 있지만

그걸 꺼내는 순간 관계가 깨진다.


그 선은 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지침에는 명확히 나온다.


심의 기준이 별도로 있다면 공개해야 하며,
명시되지 않은 사유는 재심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업으로 일하는 입장에선
억울해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


결국 되돌아와 다시 안을 짠다.


심각한 경우, 계획안을 전면 수정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땐 건축주에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건축주는 화가 난다.
직접 건축과에 전화를 걸거나 방문해 항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다.


“원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돈인 그 들은
결국 타협한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감정을 눌러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건축주는
건축사에게 분노를 쏟기도 한다.


하지만,
직접 공무원을 만나면
대부분은 우리가 겪는 고초를 이해하게 된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진심으로 '독심술'을 배우고 싶었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이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까?



”공무원은 민원인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허가권자와 민원인의 경계.


“갑”과 “을”의 관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우린 늘 의심받는다.


“혹시 꼼수가 있진 않을까?”


그런 시선.


이제는
조금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오늘도 홈페이지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그런 규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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