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럽자전거여행 16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 – 피레네를 넘으며

by 이쁜이 아빠

나는 어제 순례자 여권발급 사무실에서 구입한 가리비를 내 자전거 안장밑에 달았다.


이제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약 800km 출발이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장피드포르.
붉은 기와지붕 사이로 새벽빛이 번지던 그 아침, 나는 마침내 순례길의 첫 발을 내디뎠다.
마르세유에서 시작된 자전거 여정의 마지막 장, 그 시작점이자 시험대가 바로 이 피레네 산맥이었다.

페달을 밟을수록 숨이 가빠지고, 길은 점점 좁아진다.
산 아래의 평화로운 마을 풍경은 어느새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산새의 울음과 바람 소리가 귀를 채운다.
해발 800m쯤, ‘오리손 산장(Refuge Orisson)’이라는 표지가 보였다.

그곳의 테라스에는 이미 몇몇 순례자들이 땀에 젖은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숨이 멎을 듯한 오르막 끝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커피는, 세상의 모든 위로가 액체로 변한 듯했다.
잔을 손에 쥐고 멀리 바라보니, 구름 사이로 프랑스의 들판이 보였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이미 잘하고 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시 페달을 밟아 오르막을 넘고 내리막을 이어 달리다 보니,

나와 옆동료들의 핸드폰에 요란한 진통소리. 우리는 자전거로 국경을 넘은 것이다.

어느새 스페인 땅이다.
국경을 넘어선다는 건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마음속 경계선을 허무는 일 같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니라, 길이 나를 이끌겠지.’

오후 무렵, 드디어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근처에 도착했다.
고요한 돌담길 사이로 들리는 종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수도원 옆의 작은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빵, 수프, 그리고 와인 한 잔.
허기와 피로가 뒤섞인 몸에 그 따뜻한 음식은 천국의 맛이었다.
창문 너머로 수도원의 지붕이 보이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오후, 길은 서서히 완만해졌다.
자전거의 기어를 높이며 내리막을 달리자, 산과 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눈앞의 풍경이 영화처럼 흘러간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순례길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순간을 느끼는 법을 배우는 길이구나.’

그리고 해질 무렵, 수리비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한 돌담길 사이로 저녁노을이 깃들고, 순례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작은 알베르게(숙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의 길은 길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멀리까지 다녀왔다.”

부엔 까미노...

#유럽자전거여행 #미국주식 #퇴직연금 #ChatGPT-5 함께하는 주식 공부#익절과 손절#자전거 여행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