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던 용서의 언덕에서
바람이 불던 용서의 언덕에서
수리비를 출발한 아침,
출발 전 수리비 마을에 있는 찐 로걸스러운 골목에서 성당을 뒷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바람은 이미 밀밭을 흔들고 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자갈길을 밟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순례길의 초입이라 몸은 아직 가볍고,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멀리 언덕 위로 풍력발전기가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흰 날개가 천천히 회전하며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그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이다.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자갈이 흩어진 비포장길은 때로는 미끄럽고, 때로는 험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나바라 평원의 황금빛 들판은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들었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걸어오던 순례자들이 점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각자의 무게와 사연을 짊어진 채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언덕의 경사는 점점 가팔라졌다. 땀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고, 다리는 무겁게 떨렸다. 그때마다 들판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 등을 밀어주었다. 마치 “조금만 더 가라”는 응원의 손길 같았다. 마지막 굽이를 돌아 올라서자, 철로 만든 순례자 조형물이 나타났다. 말에 오른 이, 당나귀를 끄는 이, 그리고 걷는 순례자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뒤편으로는 나바라 평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Santiago de Compostela 550km, Seoul 9700km.”
순례의 길 끝까지는 아직 550km, 고향 서울까지는 9700km.
그 거리를 바라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나는 지금, 집에서 가장 멀리 와 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다.’
그 숫자들은 단순한 거리의 표시가 아니라, 지금까지 달려온 내 인생의 궤적처럼 느껴졌다.
언덕을 내려오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마침 축제가 한창이었다.
흰 옷과 붉은 스카프를 두른 사람들,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 그리고 웃음.
그 한가운데 있는 작은 피자가게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막 구워낸 피자 한 조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빵은 바삭했고, 치즈는 짭조름했으며, 토마토의 향은 태양처럼 진했다.
길 위에서 만난 그 한 조각의 피자는 ‘순례의 보상’이자, ‘삶의 위로’였다.
그 순간, 오르막의 고통도, 바람의 거칠음도 모두 감사로 바뀌었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워질 즈음, 팜플로나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의 성문 너머로 사람들의 일상이 보였다.
그들의 평범한 하루가 나에겐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순례란 누군가를 용서하는 길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를 용서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유럽자전거여행 #퇴직 후 주식 #퇴직연금 #ChatGPT-5 함께 주식공부#자전거 여행#익절과 손절#자유로운 영혼 꿈꾸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