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언덕을 지나, 부르고스 성당까지
아침의 공기는 싸늘했고, 자전거의 체인은 마른 먼지에 살짝 삐걱거렸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한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라 리오하의 끝자락, 산토 도밍고를 떠나 부르고스로 향하는 길 —
그 길은 순례의 중심부로 향하는 문턱이자,
마음을 비우는 시험의 여정이었다.
길 위에는 햇살보다 먼지가 더 짙게 깔려 있었다.
바퀴 자국이 깊게 남은 흙길을 따라
동료 순례자들의 그림자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내려 밀며 걸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인생의 속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조금 앞서고, 또 누군가는 잠시 멈춘다.
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오르자, 언덕 위에 커다란 십자가가 나타났다.
주변은 바람 한 점 없는데, 그곳만 유난히 공기가 다르게 흘렀다.
바위 위에 쌓인 작은 돌무더기마다
누군가의 소망과 고통이 얹혀 있었다.
나도 조용히 발치에 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건 피로였을까, 미련이었을까.
십자가 아래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멀리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은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처럼 완벽했다.
파란 하늘, 구름의 그림자,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한눈에 펼쳐졌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달랐다.
눈앞의 아름다움이 끝나자, 곧바로 자갈이 흩뿌려진 좁은 다운힐 코스가 이어졌다.
조금만 방심하면 앞바퀴가 미끄러져 자전거가 전복될 듯한 험한 길.
그 짧은 순간, 나는 몸의 균형보다 마음의 균형을 먼저 다잡아야 했다.
속도를 줄이며 브레이크를 잡는 손끝에서,
마치 인생의 급경사를 내려오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언덕을 지나 다시 평지가 시작되자,
보리밭은 수확을 마치고 누렇게 누워 있었다.
하늘은 스페인 특유의 파란빛으로 환했다.
“Burgos”라고 쓰인 붉은 문장(紋章)이 보이자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는 듯했다.
길 위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며
알베르게 앞의 ‘Buen Camino’ 벽화를 바라봤다.
그 말, 좋은 길을,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인사인가.
누구에게나 그 말이 필요하다.
길 위의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인생을 걷는 우리 모두에게도.
오후가 깊어질수록 하늘빛은 점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태양은 느리게 기울며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그림자 속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바퀴 아래의 돌길이 부드럽게 바뀌고,
바람에 섞인 도시의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그건 먼지 냄새가 아니라,
문명과 성스러움이 섞인 부르고스의 향기였다.
부르고스 성당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수백 년 된 고딕 첨탑 위로 남은 햇빛이 스며들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붉게 반짝였다.
그 순간, 길고도 험했던 하루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됐다.
“이 모든 길은 결국, 나를 나에게 데려다주는 여정이었다.”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자전거 옆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십자가 언덕에서 올려둔 작은 돌처럼,
오늘의 하루도 내 안에 단단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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