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위의 예의와 와인, 그리고 신발
오늘은 레온까지 달린다.
메세타 고원의 아침은 춥다.
약 90km 정도 라이딩 할 예정이다.
해를 등지고 오늘도 달린다... 부엔 까미노 ~~~
길 위에서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무에 붙은 A4용지 한 장.
그림에는 엉거주춤 쪼그리고 앉은 사람 옆에 응아표시, 그리고 휴지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 옆에 ‘✔’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가까이 가보니, 순례길의 노상방뇨 금지 표지였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당신이 머문 자리, 뒤처리는 휴지통에....
누군가는 이 먼 길을 걷다 참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기본적 욕구마저 길 위에서는 예의의 문제가 된다.
그림은 유머스럽게 그려져 있었지만, 나는 묘하게 부끄러웠다.
길 위의 예의란, 단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날 이후로 나는 간단한 일이라도 ‘이건 길이 허락하는 행동일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순례란 결국,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길과의 약속’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작은 마을 까리온에 들어섰다.
한적한 광장 한편, 그림 같은 식당이 보였다.
햇볕 아래 반짝이는 와인병들이 테이블 위에 줄지어 있었고, 벽에는 순례자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다른 날 보다 많이 주문했다
식당주인은 기분이 좋은지...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반갑게 웃더니, 주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먼지로 덮인 와인병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 와인은 내가 만든 거야. 30년 됐지.”
그는 마치 손주에게 자랑하듯 병을 닦으며 말했다.
와인은 코르크마저 바스러질 듯 낡았고, 표면에는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와인을 따르며 내게 말했다.
“순례길은 사람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 이 와인도 그래. 세월이 길수록 깊어지지.”
한 모금 마셨다. 처음에는 묵직하고, 이내 부드러워졌다.
순간, 길 위에서 지나온 수많은 바람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이제 네 번째야.”
그 말에 나는 잠시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30년 인생이 고스란히 병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어쩌면 순례자도 와인과 같을지 모른다.
긴 시간을 견디며 자신만의 향을 찾아가는 존재.
그리고 그 향은 오직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만 남는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 무렵,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신발을 벗었다.
신발 밑창이 벌어져 있었다. 유럽자전거여행 출발할 때 새로 산 신발이었다.
프랑스에서 고성을 걷다가 신발 밑부분이 찢어진 상태에서 수리를 하고 고친 신발이었다.
처음엔 단단했고, 익숙해지면 든든했지만, 이제는 피로와 흙먼지, 자갈길을 버티지 못한 채 갈라져 있었다.
‘그래, 인생의 길도 결국 이 신발 같겠지.’
처음엔 반짝였지만, 수많은 걸음과 비바람을 견디며 닳아가는 것.
하지만 그 닳은 흔적이 바로 ‘살아온 증거’ 아닌가.
나는 신발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바라봤다.
부르군디 와인의 색처럼 진한 흙이 묻어 있었고, 철클릿 클릿은 반쯤 마모돼 있었다.
그래도 클릿은 사용가능하니, 여행은 문제없다.
그 신발로 나는 수백 번의 언덕을 올랐고, 또 수백 번의 내리막을 내려왔다.
그 모든 길 위에서, 나는 넘어지고, 일어나고, 웃고, 울었다.
신발 바탁은 찢어진 상태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평안했다.
오히려 이제야 진짜 순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순례는 완벽한 장비로 걷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끌고 가는 여정이었다.
신발이 부서지듯, 나의 완고함도 조금씩 깨져나갔다.
그 틈새로 들어온 바람과 햇살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 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마당에서 점심식당 주인의 와인을 다시 떠올렸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향이 짙어진다.’
그의 말이 문득 가슴에 남았다.
길 위에서 본 모든 장면 " 나무에 붙은 표지판, 먼지 쌓인 와인병, 닳아버린 신발 "
그것들은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삶이란 결국, 조금씩 닳아가면서 깊어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길 위에 남은 나의 조각들을 모아,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바람이 이제는 나를 밀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