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을 출발하다 – 90km의 고요와 바람
레온을 출발하다 – 90km의 고요와 바람
스페인 북부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갑다.
레온의 골목을 빠져나오며 페달을 밟기 시작한 순간, 도시의 공기와 햇살이 동시에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전날 밤 레온 대성당 앞에서 느꼈던 웅장함이 아직도 눈가에 잔잔히 남아 있었다. 고딕 양식 특유의 뾰족한 첨탑과 로즈 윈도우는, 순례자의 마음에 ‘오늘도 길은 계속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새긴다.
레온 중심가의 신호등 아래에서 잠시 멈추어 섰을 때, 유럽 특유의 아침 냄새 갓 볶은 커피와 따뜻한 빵 냄새가 섞인 향이 코끝을 스쳤다.
출근길을 나서는 현지인들, 천천히 골목을 걸어 나오는 여행자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거리의 고요함까지. 그 속에서 헬멧을 들고 길가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온을 벗어난 길은 점점 평야가 넓게 펼쳐졌다.
사리에 고스와 카리소 데 라 리베라를 지날 때쯤, 도시의 기운은 어느새 뒤로 사라지고 메세타 특유의 황금빛 들판이 길 양쪽으로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은 정면에서 불어왔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이 길을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이 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페달을 돌리는 발끝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길에 나서자, 드디어 오르비고의 돌다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침 햇살 아래 길게 이어진 돌다리는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다리 위를 천천히 건너며 잠시 자전거를 멈추어 섰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다리를 건너갔다. 그중 일부는 전쟁을 피해 도망치듯 이 길을 걸었고, 어떤 이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지나갔다. 그들의 발자국 사이로 내가 또 한 걸음을 더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그저 한 사람의 여행자였지만, 마음만큼은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오르비고 마을에 도착해 식당에 들렀다.
누군가 이곳 연어요리가 특별하다고 해서 우리는 연어요리를 주문했다.
주문한 연어 요리가 이날의 가장 큰 선물이 될 줄은 몰랐다.
오븐에서 살짝구워진 연어에 스페인 북부 특유의 진한 육수를 부어내는데, 노릇한 빵이 육수를 머금으면서 은은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평소 먹던 연어와는 전혀 다른 깊은 맛.
순례길을 달리며 먹은 식사 중 가장 인상 깊은 한 끼였다.
자전거와 함께 먼 길을 온 나에게 '잘 왔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위로 같은 맛이었다.
오르비고를 지나면서 길은 조금 더 완만해졌고, 나무 그림자가 간간히 드리워져 라이딩이 한결 편안해졌다.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에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골목 사이로 스페인의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고,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낯선 도시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따뜻함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스토르가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바로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아스토르가 주교관(Palacio de Gaudí). 동화 속 성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첨탑과 섬세한 곡선미는 길 위의 피로를 단숨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한가운데 이런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황톳빛 흙먼지가 묻은 신발을 신고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90km의 여정 동안, 바람은 내게 쉼 없이 말을 걸어왔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좋다고,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고, 그리고 이 길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레온을 떠날 때만 해도 그저 또 다른 하루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스토르가에 도착해 가우디의 궁전을 바라보는 순간 깨달았다. 순례길의 하루는 결코 ‘그저 그런 날’로 지나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오늘도, 길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내 마음속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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