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시아 산맥을 넘으며
갈리시아 산맥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낮게 깔린 숲의 향기, 짙은 초록의 숨결, 그리고 산맥 저 멀리서 밀려오는 서늘한 바람까지… 아침 햇살 아래에서 나는 이 길을 걷고 달려온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몇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던 사람들이 바로 이 능선을 넘어 산티아고로 향했을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페달을 밟는 내 마음이 묵직해졌다.
오늘 라이딩은 약 74km, 상승고도 1,200m.
수치로만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하루지만, 이 길에 들어서는 순간 힘든 마음보다 이상하게 가벼운 설렘이 먼저 앞섰다. 골짜기 사이로 꿀처럼 흐르는 아침햇살이 길 위에 쏟아지고, 갑자기 숲이 열리면 끝없이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능선이 시야를 환하게 틔워주었다
페달은 점점 무거워졌고, 경사는 더욱 가팔랐다. 한참을 오르던 중, 앞서 가던 일행 형님이 갑자기 속도가 뚝 떨어졌다. 숨이 차오른 듯 헐떡이며 자전거를 붙잡고 있길래 나는 아무 말 없이 형님의 등을 조심스럽게 받쳤다.
사실 자전거를 타면서 다른 사람을 밀어주는 건 꽤 위험한 행동이다.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넘어지기 쉽고, 밀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행동이 자랑처럼 들릴까 망설여졌지만…
순례길에서는, 특히 이런 산길에서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움직일 때가 있다.
형님이 포기하지 않도록, 그저 함께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둘이서 천천히, 그러나 묵묵히 경사를 오르는 그 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깊게 마음속에 새겨졌다.
잠시 후 능선을 넘자 갑자기 길이 편안해졌고, 산 아래로 펼쳐지는 초록의 바다가 나타났다. 풍경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위로하듯 고요했고, 하늘은 파랗게 열려 있었다. 이런 풍경 때문에 사람들이 몇백 년 동안 이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내려가는 길은 더 아름다웠다.
숲은 더욱 깊어지고, 그늘 아래로 난 좁은 오솔길에는 바람이 가볍게 흐르고 있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깜빡이며 길 위에 쏟아졌고, 페달을 천천히 굴릴 때마다 숲의 푸르름이 눈앞에서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오후가 깊어갈 무렵, 우리는 드디어 사모스 수도원(Monasterio de Samos) 앞에 도착했다.
숲을 등지고 우뚝 서 있는 수도원은 거대한 세월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6세기부터 이어져 온 건물답게 벽돌 하나, 창문 하나에도 오래된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갔고, 어떤 이는 기도를 남기고, 또 어떤 이는 눈물을 남겼겠지.
나는 수도원 앞 돌담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
바람이 멀리서 불어와 고요한 마당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이 길을 함께 달려온 모든 시간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숙소에서 스페인식 파에야를 먹었다.
커다랗게 펼쳐진 팬 위에 해산물, 올리브, 파프리카가 온갖 색을 이루고, 레몬의 산뜻한 향이 올라오는 그 음식은 그날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이국의 산맥을 넘고, 오래된 수도원 앞에서 숨을 고르고, 동료를 도우며 한 고비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길은 아직 많지만,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도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분명하게 느낀 하루였다.
순례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처럼, 오늘처럼 함께 돕고, 나누고, 숨을 고르며 달려가는 이 시간이 바로 순례길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갈리시아 산맥의 바람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일 또 이어질 길을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아침이 오면 페달을 밟게 되겠지.
오늘보다 조금 더 깊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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