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하루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단 하루를 남겨둔 아침,
짙은 안개가 온 들판을 감싸고 있었다.
햇빛은 안개 뒤에서 희미하게 번졌고,
그 속을 천천히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내 페달 소리가
귓가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전날 묵었던 작은 호텔의 뒷마당에는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올리브나무가 서 있었다.
뒤틀린 듯하면서도 단단하게 박힌 줄기,
세월을 새긴 깊은 상처들,
그리고 묵묵히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들…
이 나무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고
다시 떠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왔을까.
그 앞에 서 있으니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그 나무의 나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도
이 길 위의 한 장면으로 묵직하게 남아 가는 느낌이었다 요
호텔 로비 한쪽에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나란히 서 있었다.
창을 든 돈키호테는 지금도 거대한 풍차를 향해 뛰어들 것 같고,
산초는 현실적인 표정을 짓고 그 곁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례자의 마음도 저 둘처럼 움직인다.
하루는 돈키호테처럼 꿈을 향해 달리고,
또 하루는 산초처럼 현실을 차분히 받아들인다.
순례길은 늘 이 두 감정의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도록 만드는 길이다.
점심으로 나온 샐러드는
양파, 토마토, 옥수수, 당근이 가득 담긴
아주 단순한 구성의 음식이었다.
그런데도 그 한 접시는
몇 시간 동안 페달을 밟은 몸에
이상할 정도로 깊게 스며들었다.
간단한 한 끼였지만
이 길의 묵직한 시간 위에서
그보다 더 좋은 위로는 없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니
숲길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고,
바람은 페달을 밟는 리듬에 맞춰 팔랑였다.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 표지석을 볼 때마다
설렘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지막 30km는
다리는 천천히 움직이는데
마음은 자꾸 앞서가려는 시간이었다.
숲길을 달릴 때의 그림자와 흙냄새,
바퀴가 자갈을 부드럽게 밀고 지나가던 소리,
그리고 길 끝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도착의 기운까지…
모든 장면이
이 여행의 마지막 퍼즐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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