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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은 외롭다.

122일 차

by 다작이

글쓰기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다. 그렇게 좋은 걸 하고 있다 보면 의외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아도 막상 어디에 가서든 얘기하려고 하면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어딘지 모르게 그 말로는 부족한 듯하다. 드문 정도가 아니라 웬만해서는 한 번 이상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 예외가 있다면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 즉 전문 작가만 예외가 아닐까 싶다.


특히 요즘처럼 타인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데에 급급한 시대라면 더더욱 그 정도는 심할 것이다. 할 말이 많은 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게 허용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말할 기회를 뺏기는 다름없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할 뿐이지 타인에게 그 기회를 주려 하지 않는다.


처음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대개는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말을 하는 데에만 관심이 크지 타인의 말을 듣는 건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늘 하고 싶은 말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어찌 보면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모처럼 기회가 왔으니 이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글로 풀어내겠다는 태세다. 어지간해서는 주어지지 않는 그 기회만 노리고 차곡차곡 할 말을 쌓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치는데 들을 사람은 좀처럼 없고, 어떤 자리가 마련되어도 그의 말을 들으려는 사람보다 자신들의 말을 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수십 혹은 수백 명의 무리 속에 있어도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다. 대인관계에서 깊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 시쳇말로 이런 상황을 두고 '은따'라고 표현하면 될 듯하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받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단지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 했을 뿐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이 물음에 가장 먼저 노출되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일 테다. 만약 무조건적으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가면 언제나 환영받는지도 묻고 싶다. 특히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자리에 갔을 때의 반응이 더 궁금하다. 같은 논리로 이번에도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지 묻고 싶다. 물론 청중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강연이나 강의를 하는 상황은 제외하고 말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분명 서로 다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은 상관성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말할 것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글을 쓰게 된다. 또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조금의 틈이라도 주어지면 주변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말하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말하기와 외로움, 혹은 글쓰기와 외로움 등은 서로 어울리는 낱말이 아닌데도, 말한다고 할 때 혹은 글을 쓴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깔리는 그 외로움의 깊이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다는 게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해도 될 것 같다. 나는 마음속에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늘 외로움을 느낀다. 간혹 운이 좋아 내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던 그 많은 말을 다 쏟아냈다고 가정해 보겠다. 과연 마냥 좋기만 했을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다 하고 난 뒤에 물밀듯이 밀려드는 공허함에 어쩔 줄 몰라하진 않았던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고 해서 생각한 것만큼 쾌감을 느낀다거나 즐겁진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나는 글쓰기를 찾아낸 듯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나의 말이 글의 소재가 되어 한동안은 미친 듯이 글이 쏟아져 나온다. 말을 하지 못해 다소 답답한 마음은 들어도 그나마 글로 표현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마음이 달래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글쓰기를 목적으로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껏 쓴 글을 읽어주는 이들이 없다. 주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결국 난 글을 쓸 때마다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만약 이런 외로움이 없다면, 어쩌면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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