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 그 아홉 번째 이야기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일단 마음이 무척 바빠진다. 그냥 단순하게 쓰면 되지 골치 아플 일이 뭐 있겠냐며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것저것 미리 챙겨둬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래도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속될 때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 소설을 쓸 때에는 필요한 책을 옆에 비치해 놓아야 하고, 글을 쓰면서 언제든지 단어를 검색하거나 그 외 필요한 내용들을 찾아볼 별도의 정보통신기기(예를 들어, 탭이나 휴대전화 및 노트북 등)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표현이 떠올랐다고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휘발될 가능성이 크고, 다른 내용들을 생각하다 보면 잊어버릴 우려 또한 큰 법이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그때그때 메모라도 해둔 것이 있다면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여의치 않을 때에는 휴대전화의 녹음기 앱 등을 활용해 필요한 내용을 당신의 목소리로 녹음해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어차피 모든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 특히 소설 쓰기에서만큼은 '만반의 준비'란 쓰기의 시작을 미루는 것과 동일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단 한 번에 길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더러는 헤매기도 하고 간혹 잘못된 길에 들어서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시간적인 조급함만 덜하다면 뭐, 조금 헤맨다고 해서 그리 문제 될 건 없지 않겠나 싶다. 사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 아니겠는가? 자, 이제 우리는 서울로 가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집을 나서려 한다. 뭘 빠뜨린 게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면 나와 함께 서울로 가보도록 하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어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몇 편의 소설을 먼저 써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얘기를 시작할까 한다.
처음 소설을 쓸 때 과연 어떤 내용을, 혹은 무엇에 대해 쓸까, 하며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일단 소설 쓰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 쓰는 걸 어렵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소설도 쓸 수 없게 된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부터 깨뜨려야 한다. 어찌 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정답이란, 바로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서 소설을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을 빚어나갈 때 그 인물의 직업을 두고 고민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괜히 에둘러갈 필요는 없다. 이때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당신이 몸담고 있는 그 직업에 대해 쓰면 된다는 얘기다. 더 쉽게 얘기해서 주인공의 직업이나 생활환경 등을 기술할 때 당신의 직업을 바탕으로 쓰면 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첫 소설의 등장인물, 그중에서도 특히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심사숙고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다지 비중이 없는 인물이라면 그(그녀)의 직업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불필요하겠지만, 주인공은 그 동선, 즉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일상 속에서 늘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떤 식으로든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이 주인공의 직업에 대해서 기술하게 되면 꽤 곤란하지 않겠나 싶다.
그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반부터 시작된다. 온종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그 많은 시간이 어느새 다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는 늘 바쁘기만 했다. 오후 4시 반인 퇴근 시간이 되면 비로소 그는 숨을 돌린다.
당신이 쓰고 있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막연하다. 만약 저런 식으로 그에 대해서 썼다면 그는 그저 직장인이라는 걸 말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래서 독자로부터의 공감이나 감정이입 등의 효과를 얻으려면 당신이 쓰는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그 인물을 완벽히 밖으로 불러내야 한다. 이를 두고 단순히 등장인물의 직업에 대해 서술한다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그녀)의 직업적인 일상과 하루의 일과를 제시하지 않으면 특정한 상황에서 그(그녀)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는지에 대한 설득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초등학교에서 26년째 아이들을 가르쳐 오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현직 베테랑 교사 어쩌고 저쩌고 따위를 지금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학교에서 근무했으면 다른 어떤 직업의 세계보다도 초등학교 교사의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게 아니겠는가? 만약 소설 속의 주인공을 초등학교 교사로 설정한다면 고민할 것 없이 그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쓸 수 있고, 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다분히 내가 쓴 소설에는 학교가 많이 등장하고, 당연히 등장인물 중에는 교사가 많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언제 어디에서든 학교나 교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쓸 수 있고, 간혹 내가 잘 모르는 부분도 쉽게 필요한 자료를 선별할 수 있으며, 또 보건교사나 영양교사처럼 나와는 조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보다 더 빠르고 쉽게 자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의사가 의학소설을 잘 쓸 준비가 되어 있고, 법조인이 법정소설을 쓰기가 용이하며, 또 형사가 범죄소설을 쓰는 데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조금은 더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일기 쓰기와 메모하기를 권하고 싶다. 매일이 아니라도 좋으니 직장에서 조금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나, 아니면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하루의 일과를 일기로 써 두자. 가령 1년 치의 일기가 모인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1년 동안의 동선과 행동 패턴 및 습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또, 짧게는 1달, 혹은 길게는 1년을 단위로 해서 직장에서의 행사 및 연간 업무의 간략한 메모 정도를 반드시 해 두자. 이 역시 주인공의 행적을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참고자료가 될 테다. 이건 내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데, 만약 당신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회의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녹음기 앱으로 녹음해 두면, 직장 상사나 하급 직원이 서로 나누는 대화나 회의에서의 발언 패턴 등을 통해 당신의 직업 세계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집필할 때 자신의 직업을 토대로 써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떠올려 보면,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직업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독자가 우리가 쓴 소설을 읽을 때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겠다. 만약 누군가가 읽었을 때, '에이, 이건 아니지.'라고 한다거나 '뭐? 그럴 리가 없잖아?'라는 식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그 작품은 이미 실패작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간혹 TV에서 의학드라마를 볼 때 시청자들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열광을 하는데, 정작 의사들은 현실성이 없다며 그 드라마를 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건 작품의 생명으로 봤을 때에는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만약 당신의 직업에 대해서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겠다. 그건 아마도 그동안 몇 편의 작품을 쓰는 동안 이미 자신의 직업을 소재 삼아 집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과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해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식 혹은 정 안 되면 가장 친한 친구들의 직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그건 앞에서도 얘기했듯 살아 있는 참고자료가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든 궁금한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한몫했다. 꽤 오래전에 등장인물 중 경찰이 필요했는데, 내가 살던 동네의 지구대에 음료수를 사들고 취재(?) 차 갔다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온 적도 있고, 사전에 약속을 잡기 위해 몇 번 전화를 걸었을 때 한창 바쁘니 두 달 뒤에 다시 전화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내 신분을 철저히 밝히고 어떤 목적으로 방문해서 무엇에 대해서 묻는지 명확히 얘기했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봤을 때 어지간히 인지도가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사실상 인터뷰를 통한 자료 조사 및 취재는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의 직업이나 당신 가족 및 친구의 직업, 그도 여의치 않으면 왕래가 잦은 지인의 직업을 모델로 삼으라는 것이다.
간혹 자신의 작품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혹은 흔해 빠진 소설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남들이 잘 모르는 직종을 선택하여 작품을 집필하는 경우가 있다. 맞다.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면 확실히 타인에게 더 잘 읽히게 될 것이다. 일단은 흥미 유발이라는 점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소설을 읽는 내내 그 흥미와 긴장감이 유지될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을 써야 할 때 가장 큰 단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조금도 작품을 진행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그 직업은 당신이 모르는 세계가 아닌가?
만약 지금이라면 수많은 유튜버들 중에서 당신이 찾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어서 충분히 참고가 될 만하고, 또 챗 GPT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챗GPT가 보여주는 정보의 정확성은 100% 신뢰할 만한 정도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질문자가, 즉 정보를 필요로 하는 우리가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을 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챗 GPT가 제공하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만약 이를 맹신하여 등장인물의 직업 세계에 대해 기술하다 보면 종종 당신의 소설을 읽는 이에게서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소설가가 작품을 집필하는 것 못지않게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곳이 바로 자료조사라고 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예전처럼 도서관을 뛰어다니며 이 책 저 책을 뒤지는 식으로 자료를 조사하는 시대는 지나갔을 것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자료를 도출할 수 있는 인터넷이 가장 유용한 도구로 떠오르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자료를 조사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역시 인터넷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때마다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는 가짜 지식 및 정보들을 걸러내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를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가짜 지식과 정보들을 가려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작품 쓰기를 일시적이나마 중단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넘어지게 되면, 그리고 그 '넘어짐'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결국엔 소설 쓰기를 그만두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소설 쓰기를 그만두는 것을 보았고, 부끄럽지만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쓰다 만 작품이 몇 편이나 되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직까지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당분간은 굳이 자료조사까지 해가면서 소설을 쓰라며 권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탄력을 받아 신나게 글을 쓰다가도 한 번 막히면 그게 곧 그 작품 진행의 첫 번째 장애물이 될 테고, 그렇게 해서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자료를 조사하고 보강하여 다시 집필하게 되더라도 얼마 못 가 다시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당장 출간이 목적이 아니라면 자료조사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즉 당신이 잘 아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처녀작을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나 지금까지 몇 편의 단편소설만 써 봤다면, 아직은 자료조사를 통한 방대한 작품을 집필하려는 계획은 일단 미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중편이라도 서너 편 써 봤거나 그도 아니라면 단 한 편의 장편이라도 써 본 사람들을 제외한 그 나머지 사람들은 글쓰기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그 세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권한다.
만약 당신이 소설이라는 형태의 글을 써 본 경험이 있다면, 한창 쓰다가 다양한 이유로 막혀서 중단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거창하게 시작하면 절대 글이 거창하게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당신이 가장 잘 알고, 그래서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것에서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는 당신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 쓰기 팁 5: 자신이 잘 아는 것에서 첫 작품 써 보기
(1) 직장에서의 일을 바탕으로 1주일에 두세 번쯤은 반드시 일기를 써 두자.
(2) 한 달, 혹은 1년을 단위로 해서 직장에서의 행사 및 연간 업무의 흐름과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메모해 두자.
(3)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위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직업을 당신이 지금 맡고 있는 직업으로 설정해 보자. 한결 수월하게 주인공의 동선과 일상에서의 생활 모습을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