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어리지 않다

나의 20대 이야기 Part.1 (1)

by 박씨

내 나이 서른, 이제는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나이, 하지만 난 아직도 자리가 잡히지 않은 불안정과 함께하는 중이다.

아직 불안정하지만 나는 이제 더 나아가기 위해 내 이야기를 쓰며 덜어내보려고 한다.


나는 23살부터 아주 시끄러운 연애를 했다.

20대가 되자마자 만나 3년을 함께한 남자친구가 군대를 제대하면서 이별하였고, 난 그 허전함을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를 잊기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되었다며 술과 함께 친구랑 시간을 보내던 철없던 ‘아이’ 같았던 나에게 ‘어른’처럼 느껴지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느낀 성인 남자의 듬직함, 그것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번, 두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그 시간조차 익숙해졌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애’를 시작했다.

그와의 연애가 난 어른들의 연애처럼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를 좋아하던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나 자신이 느낄 정도였다.

이때 당시,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에 가득 쌓아두는 성격이었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받으면서 화를 풀지도 못하는 그런 답답한 성격.

그와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난 직장에서 안 좋은 오해를 사게 되어 쫓기듯이 퇴사하게 되었고, 퇴사하는 날까지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어서 죽고 싶었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도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내 옆에서 묵묵히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 주고, 해결 방법을 모를 때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던 그에게 다시 한번 푹 빠지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내 첫 방황도 시작되었다.


그와 데이트한다며 늦은 새벽에 귀가하는 건 기본, 가끔씩은 몰래 외박을 하기도 했다.

그 방황은 내가 직장에서 상처받았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며 주문처럼 외우던 합리화의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때마침 남자친구도 회사에서 부조리를 당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나는 나와 퇴사 날짜가 같다며 이것도 인연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댔다.

퇴사 이후 둘이 시간 상관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생활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나있었고,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홀 서빙을 시작했다.

내 전공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된 나의 첫 번째 변화였다.

근무 시간은 길고 휴무는 유동적이었지만 새로운 일이라는 자체로 나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일을 했던 것 같다.

바쁜 점심시간을 해결하는 나 자신에 흠뻑 취하기도 했고, 하루 있었던 일을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니 내가 일할 때 혼자 낮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외로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옆 가게에서 직원을 뽑는다고 하여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직장에서도 붙어있게 되었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고, 퇴근 후에는 데이트라며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하루를 참 알차게 쪼개서 생활했던 것 같다.


내가 일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유일하게 점장부터 직원까지 나이대가 어렸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지만 그만큼 직장에서의 책임감은 다른 곳과 달리 가벼웠다.

하루 이틀 일하고 직원이 도망가는 일도 그곳에서는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홀 서빙을 관리하던 이모님도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시게 되고, 나보다 어리지만 먼저 입사한 동생은 사내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내연애가 끝나면서 그 동생의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인사도 없이 헤어지게 되어 나는 참 많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 동생이 나가면서 홀 직원이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200명이 족히 들어갈 크기의 레스토랑에서 혼자 주문과 서빙, 간단한 음료제조, 계산, 테이블 정리 등을 하려니 하루하루 지쳐갔다.

바쁠 때는 주변 가게에 도움을 요청하며 일을 했었고 결국에는 점장님께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지만 잘 구해지지 않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두 달을 버텼다.

그걸 안쓰럽게 본 남자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여동생을 소개해주었다.


그게, 나와 남자친구의 첫 전쟁의 시작이었다.


나에게 일을 배우던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남자친구 사이를 이간질시켰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지 않던 남자친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직장에서 모함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일로 인해 그 여동생의 어머니, 남자친구의 어머니, 남자친구까지 모여 오자대면을 하기도 했다.

결론은 내가 언니니까 속상하겠지만 참고 넘어가줘라.

참나, 내가 오해로 인해 회사를 퇴사할 때도 이렇게 어이없지 않았다. 난 내 가족도 아닌 남에게 이해를 강요당하며 내 감정을 쉽게 정리하는 인간들이 너무 싫었다.

참다 참다 결국에는 내가 퇴근길에 남자친구에게 악바리로 소리를 질렀다.


“너의 잘난 엄마부터 그 친하다던 여동생, 그 여동생의 엄마까지 싹 다 꼴도 보기 싫고, 무엇보다도 가운데에서 멍청하게만 있는 네가 제일 싫으니 내 눈앞에서 다 같이 꺼져”


그렇게 그날은 남자친구랑 9시에 퇴근하고 길거리에서 자정까지 미친 사람들처럼 악에 받쳐 울고 소리 지르면서 싸웠던 것 같다.

그 길은 다행히도 자동차가 많이 다니던 국도여서 더 속 시원하게 내 속에 있던 응어리를 질렀던 것 같았다.

한참을 싸우니 어느새 국도에는 자동차도 겨우 한 두 대만 다녔고, 신호등만 말없이 바뀌고 있었다.

다 쉰 목소리로 둘 다 지쳐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남자친구한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당한걸 그 여동생에게 똑같이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까지 맛보게 괴롭힐 거라고.

하지 말라고 말리던 남자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집에 와 이를 갈으며 어떻게 복수할지 밤새 고민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괴롭힘으로 일 시키기 뿐이었지만 난 그것이라도 열심히 했다.

처음으로 사람 취급을 안 하고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대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쉬웠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 여동생은 그만뒀고, 나는 사람을 괴롭혀서 그만두게 만드는 나쁜 년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속은 시원했다.

그 아이가 그만두고 다시 나는 혼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지만


그건 또다시 나에게 찾아온 두 번째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