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방학에서 깨어난 지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아이들 얼굴에 묻어 있던 방학의 아쉬움도 조금씩 옅어집니다. 2학기는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시간 자체도 1학기보다 짧지만, 서로에게 익숙해진 만큼 빈 틈을 느낄 새 없이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지요.
2학기는 짧지만 배워야 할 양도 참 많습니다. 사회 시간, 세계지리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첫 시작으로 세계를 익히기 위한 도구를 배워봅니다. 지구본, 세계지도, 디지털 지구본과 세계지도. 하나씩 장단점을 익혀갑니다.
지난 시간은 지구본으로 직접 다양한 나라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은 개인 태블릿을 이용해 디지털 지도를 살펴봅니다.
사회과 부도 속 평평하게 펼쳐진 밋밋한 지도를 보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영상 속 지구를 보니 아이들 눈도 휘둥그레집니다. 디지털 지구본으로 선생님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찾아봅니다. 여기저기 자신들이 가 보고 싶은 나라를 외쳐댑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떠나봅니다. 첫 번째 장소는 우리 학교입니다. 저 멀리 하늘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보입니다. 스크린 속 시선이 점점 가까워지며 운동장을 둘러싼 학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일 보는 학교 건물이지만 TV 화면 속 위성지도로 본 학교는 뭔가 더 특별해 보이나 봅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아이들 입에서 '와!'하고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스트리트 뷰를 활용해 학교 주변도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아쉽게도 2015년과 2018년 사진자료만 남아있습니다. 2013년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사실 기억도 나지 않겠지요. 현재의 모습과 사뭇 다른 과거의 모습에 재잘재잘 이야기가 터져 나옵니다.
-2015년엔 아예 우리 학교가 없었어! 그냥 흙바닥이야!
-맞아! 우리 학교 2020년에 지었잖아.
-난 저 때 5살이었는데.
-어! 저 가게가 저 때에도 있었네.
-우리 동네 정말 시골이었다.
열세 살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도 과거가 있고 추억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순간도 추억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아이들 말속에서 느껴봅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개인 태블릿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원하는 나라와 도시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여행하고 싶은 나라, 여행했던 나라, 자신의 집 주변, 선생님 동네, 이사 오기 전 내가 살았던 동네,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떠나봅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배움공책 속 아이의 생각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알게 된 점>
나는 예전에 살던 동네를 가 봤는데, 옛 추억이 생각나 뭉클해졌다. 예전에도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세계는 넓은 것 같다. 집에서도 해봐야겠다. -이00
단순히 가고 싶은 나라만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열세 살 아이들도 각자 저마다의 추억을 담고 살고 있었나 봅니다.
오늘 아이 하나가 방학 중 선생님께 쓴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개학 날 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찾았다며 수줍게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뵌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년의 반이 지나가네요. 그래도 반년 동안 더 많은 추억을 쌓으면 돼요. 그 추억이 언젠가 잊히더라도 마음에 남아있으니까요. -이00
우리의 이 모든 시간은 추억이 되어 잊히겠지만, 마음 어딘가에 고요히 녹아내린다는 걸 아이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겪는 이 모든 하루하루가 추억이란 이름으로 예쁘게 다듬어져 따스한 기억으로 마음 한편에 녹아들길 바라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눈 이 모든 시간들이 언젠가 힘들고 지칠 때 슬며시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포근함이 되어 주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