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화된 창작과 플랫폼 생태계의 변화
처음에는 기쁨이었다 처음 창작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애니메이션 리뷰, 만화에 대한 감상, 스쳐가는 생각들을 표현할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 칸트가 말한 '그 자체로 선한 행위'처럼, 수익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창작 자체가 보상이었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공감해 주면 기뻤고,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지수(指數)의 등장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조회수, 좋아요, 구독자 수, 순위, 노출량… 푸코가 이야기한 '감시'처럼,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창작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잘 만든 것'보다 '잘 팔리는 것'이 중요해졌고, 어느새 나조차도 그 흐름에 올라타 있었다. 창작의 본질은 사라지고, 성과라는 지수만이 남은 것이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생태계 사람들은 점점 떠나는 것 같다. 예전처럼 대화가 오가던 장면은 사라졌고, 진심 어린 글은 묻힌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상위에 오르고, 매크로가 진심을 가장하는 세상. 이는 웹툰 시장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초기의 다양한 실험정신은 사라지고, '회귀'와 '빙의' 같은 반복되는 도식만이 플랫폼을 지배하고 있지. 도파민만 남은 생태계에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종국에는 생명력마저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지쳐가는가 숫자가 오르지 않으면 실패한 것처럼, 글을 쓴 내가 무가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플랫폼 기업이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에 있다. 기업의 이익 모델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우리는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지수가 전부가 된 세상은 창작자를 숨 막히게 만들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쓰기로 했다 나는 이 구조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다. AI가 모방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의 통찰이다. 니체가 말한 '낙타의 정신'을 벗어나, 키르케고르가 강조한 주체적 실존을 찾아야 한다. 속도가 아닌 방향, 트렌드가 아닌 진심, 유행이 아닌 철학으로 말하고 싶다.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으로, 순위가 아닌 색깔로, 효율이 아닌 이야기로. 언젠가 나의 철학을 실현하는 날이 오기까지, 이 생각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나만의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진심의 연결을 위하여 창작자는 순위를 원하지 않는다. 창작자는 진심 어린 고개 끄덕임을 원한다.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너'의 관계처럼, 창작자는 진정한 연결을 원한다. 나는 그런 세상이 끝까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해두고 싶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이 구조를 비틀어서라도 나는 진심을 말하겠다고. 나의 이야기를 계속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