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너와 나
1.
어린 시절 유달리 친해지고 싶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괜히 뭐라도 하나 더
쥐여주던 날들이 있었다. 둘이서만 더 놀고 싶고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고 싶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갖는 감정이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는 걸 느꼈던 순간 자연스럽게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알게 됐다. 그 감정은 그저 스며들었던 게 전부여서, 사회에서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우정으로 둔갑해 이름 붙이지 못했던 떨리는 감정들이 사랑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던 때 즈음 여중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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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을 해보진 않았지만 동아리를 같이 하던 친구 H가 있었다. 같은 학원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졌던 어느 날, 학원 월례고사가 끝나고 내려온 엘리베이터 앞에 그 친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초봄의 어느 날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며' 이유 없이 나를 안아준 그 친구와의 포옹 이후 마음속엔 환한 스위치가 켜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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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H와 나는 별거 아닌 거로 눈 뜬 아침부터 자기 전 밤까지 연락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오늘 숙제 뭐냐, 나 너 거 베낀다?, 학원 언제 갈 거냐, 수행평가는 잘 봤냐' 등. 시시콜콜한 질문과 이야기를 오고 가며 봄이 지나갔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사귈래?'라고 얘기했을 때는 '여자끼리 어떻게 사귀냐'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연락과 만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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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생일이 비슷했던 탓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함께 놀기로 했다. 각자의 생일날 신문지만 한 편지지에 서로 편지를 써주고, 선물로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채운 상자를 선물하며 그렇게 모두가 다 아는 '다른 반인데도 친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생일은 중간고사 즈음, 늦은 봄이었기에 함께 놀기로 약속했던 날은 아무 걱정 없이 날씨가 참 좋았다.
그날 오후, 같이 그네를 타며 '라일락 나무에 발이 닿나 올라가 보자'라며 발을 힘차게 굴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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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과 녹음이 온 세상을 뒤덮으며 매미가 왱왱 울 때도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친한 사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락하던 어느 새벽이었다.
서로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를 하다 H는 '너한테 설렌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는 '사실 나도 그렇다. 너와 함께 있으면 좋다.'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자 H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너 나랑 사겨. (사귀어)
어릴 때 이거저거 다 해봐야지.
우리도 ''*모두에게 완자가'처럼 지내면 돼'라며
쿨한 고백을 한 H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친한 사이'에서 '사귀는 사이'가 됐다.
2013년 어느 여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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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친한 사이'로 보였겠지만 우리는 어느 여름날 그렇게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100일을 기념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자물쇠를 걸던 날도, 시내를 돌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던 나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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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던 겨울 즈음, 어딘지 모르게 H가 불편해 보였다. '요즘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었냐, 우리 요즘 얘기를 너무 안 했다'라며 진지한 대화를 오랜만에 꺼냈던 어느 날, 사귄 지 반년 만에 다시 친구로 돌아가자던 H의 얘기에 스위치가 다시 꺼지며 세상이 다시 온통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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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해가 되었지만 같은 학교 같은 학원이니 H와 안 볼 수 없는 사이였다. 말은 친구 사이였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던 나와 H는 되지도 않는 유치한 일들로 사사건건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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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가 왜 헤어질 결심을 했는지는 나중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결혼은 남자랑 해야 할 것 같아'가 그 이유였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 단지 결혼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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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등학생이 됐던 어느 날, 아웃팅을 당했다. 그 뒤로 벽장 속에 꽁꽁 숨어 세상에 여자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며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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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늦잠을 자도 되는 아침이면 밤부터 새벽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레즈비언, 동성애자, 퀴어 등등의 단어를 검색하며 나랑 비슷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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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당사자들의 글을 읽고, 그들이 그린 웹툰을 보며 퀴어로서 미래를 상상해 봤다.
때때로 '동성애는 죄악이다. 동성 결혼이 나라 망친다' 따위의 글이 있었지만 사회의 거대 담론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진 않았다. 내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그러다 한 대학교의 퀴어 동아리 블로그를 봤고 '나도 대학생이 되면 퀴어 동아리에 들어가겠다' 고 마음먹었다. 당장 퀴어로서 나의 20대 30대가 안 그려지는 상황에선 조금이나마 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 혼자는 아니었구나' 위안 삼으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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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공적인 입시 마무리와 퀴어 동아리에 대한 열망으로 운 좋게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남은 건 나의 퀴어 라이프를 즐기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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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교내 퀴어동아리의 존재는 알았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선뜻 들어갈 수 없었다.
입학 후 일주일 뒤, 짧은 머리에 셔츠를 입고 있던 내게 학과 동기 00 씨가 밥을 먹다 커밍아웃을 했다. '대학은 열린 공간이구나' 생각하며 나도 조심스럽게 맞커밍아웃을 했다. 어둡던 벽장을 나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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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에 나 혼자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동창도, 대학교 동기도, 여러 경로를 통해 만난 사람들까지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내 주변에는 운 좋게 퀴어도 앨라이도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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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 많이 변했다. 서울 외에 대한민국 곳곳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기 시작했다.
김규진-김세연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여러 군데 퍼지는 것을 보며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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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사회는 분명하게 진보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동성 배우자를 이성
배우자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같은 해 10월, 동성 부부 11쌍이 혼인 평등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먼 훗날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동성혼이 합법화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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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고 생각해 외로웠던 10대의 밤, 누군가가 기록했던 퀴어로서 살아가는 삶을 읽으며 마음을 빚졌다.
빚진 마음을 누군가에게라도 갚고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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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에서 나온 세상은 생각보단 열려있는 곳이었다.
성인이 되고 자유가 생기면서 나와 비슷한, 혹은 나를 지지해 주는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에게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10년 전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곳에서 숨김없이 나의 정체성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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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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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벽장을 나오길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인용해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벽장에서 나와도 괜찮다. 벽장에서 나오지 않아도 그 또한 괜찮다.
다만 생각보다는 따뜻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 온전하다.
벽장에 있는 당신도, 벽장 밖으로 나온 당신도 그저 당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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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우리로서 존재한다.
*1) 2012년에 연재됐던 네이버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