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your side>_서수빈
"나 너 못 믿겠어."
인간 관계에서 무언가를 의심한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의심이란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이라고 한다. 이 정의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숨어있다. 무언가를 의심한다는 건 그만큼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관심이 없다면 애초에 의심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게 자신에게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심의 바탕에는 '그 일이 나와 관련 있고 가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의심은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상태가 아니다. 현실에서의 의심은 늘 ‘예측’을 수반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 진실일 것 같다는 가정을 세웠으나, 그것을 확신하기엔 정황이나 증거가 불충분할 때 의심을 시작한다. 동시에 의심 속에는 '기대'도 포함된다. 아직 확실한 것이 없기에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가 진실이기를 은연중에 소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의심 끝에 드러나는 진실은 대체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에 드는 진실을 도출할 수 있다면 애초에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혹여 파헤치다 다른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냥 덮어놓는다. 그러므로 의심의 결과는 대부분 우리 머리속에 그린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나 역시 살면서 많은 의심을 했지만, 그것을 이야기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 예상과 같든 다르든, 의심을 한 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기에 차라리 묻지 않음으로써 회피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 혼자 마음 고생을 하다가 관계를 정리해버렸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라도 할 걸.." 어차피 끝날 일이었다면 미련없이 끝내는 것이 나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의심의 고통에는, 알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과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있다. 그 고통을 끝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혹여나 알게된 진실때문에 고통스럽더라도, 미련과 의심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망치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만약 오해한 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럴 때는 내 생각을 차분히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가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것마저 두려워한다면, 내가 스스로를 너무 작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