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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기억해주세요

<Remember Me>_Iñigo Pascual

by 김단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건,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로 끌고와 세워 놓는 것. 그리고 비로소 그것이 현재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것.


오늘의 주제는 기념일입니다.


우리의 한계는 기념일로써 드러난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들은 이름을 붙여 기억한다.


누군가 태어났거나, 세상을 떠났거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거나 혹은 끝났거나. 우리는 기념일을 통해 그런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위해 기념일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기념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yes라는 답을 던졌다. 이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번은 테세우스 배의 논쟁을 본 적이 있다. 만약 배의 널판지를 하나씩 교체하여, 마침내 모두 교체했을 때 그것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연속성에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모든 것이 있었기에 존재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간난아기도, 연속성으로 인해 나와 동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를 쌓으며 살아가는 존재자다. 이런 관점에서 기념일이란, 그런 과거의 한 페이지에 꽂힌 책갈피와 같다.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 없듯 우린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념일이라는 책갈피를 꽂아 다시 찾아볼 길을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잊으면 이 세상에 없던 일이 되는 사건들도 있기에 그런 것들을 찾을 방법을 마련해 놓는다.


과거는 지금의 우리 밑에 깔린 기반이다. 이미 굳어져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을 참고문헌 삼아 현재와 미래를 구성할 수는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바꿀 수 없더라도 간접적인 영향만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큰 축복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결국 기념일이라는 건, 연속성과 망각이라는 성질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역사 속 다시 볼 페이지에 남기는 책갈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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