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in’>_Brave Girls
두려운 것을 마주할 결심
모든 일이 내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면 참 좋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언제나 불편함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육체적인 고생일 수도,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그 문턱을 넘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릴 적 나는 지나치게 소심한 아이였다. 지금도 70%의 내향형 인간이지만 그때는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힘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가 그렇게 껄끄러웠는지 늘 피하기만 해서, 내 인간관계는 깊고 좁았다.
나는 늘 엄마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배달 어플이 없던 시절, 중국집과 치킨집은 전화로 배달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 전화가 매우 무서웠던 것이다. 전화 연결음이 들리고 ‘여보세요’라는 말이 들리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유창하게 집주소를 말하고 메뉴를 주문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는 “얼마나 걸리나요?”라며 여유도 부렸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집에 없던 날, 동생과 함께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주문하는 것으로 내기를 했지만 결국 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한 손에는 수화기를 들었고 나머지 한 손에는 종이쪽지가 들려있었다. 그 속엔 집 주소와 메뉴 이름, 그리고 물어볼 것이 밑줄과 함께 적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 큰 지금도 전화 주문은 익숙하지 않다. 특히 요즘은 모두 어플과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기 때문에 직접 대면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다만 가끔 대면 주문을 받는 곳도 있어서, 그런 곳에 들어가면 밥은 먹고살아야 하기에 용기를 내서 마주한다.
되돌아보면 타인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특히 더 두려워했던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을 때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하면 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물음들이 나를 망설여지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낸 계기거 있다.
내가 직접 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니 알 수 있었다. 학생회도 해보고, 진행 스태프 역할도 해보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결국 타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내가 말을 하면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할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생각에 닿은 다음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이 줄어드니, 용기를 내기도 쉬워졌다.
언젠가 영어캠프에 간 적이 있다. 운이 좋게 당첨된 유명한 캠프였는데,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영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낯선 환경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좋은 기회를 난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걷어차버렸으니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나는 모든 결정에 생각이 많고,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그래서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거나, 익숙한 것 아니면 처음부터 도전할 용기를 잘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조금 바꾸어 준 계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컵스카우트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면접이었다. 그때의 나는 면접과 발표만 나오면 도망치던 아이였다. 그런데 내게 어떤 용기가 솟았는지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면접장 앞에서 온갖 후회를 하며 덜덜 떨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스카우트 원칙을 술술 외울 수 있었고, 결국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실패가 무서워도 도전을 하면 무언가를 얻는다는 사실을.
가끔은 이런저런 것을 재지 않고 무작정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인드로 회장 선거도 나가고 각종 대학 면접도 봤다. 아직도 면접은 두렵지만 눈을 딱 감고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용기가 없어 기회를 놓아버렸던 과거를 떠올리니, 실패하고 쪽팔린 것도 일단 시작해야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도전하는 순간 이미 본전은 뽑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