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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상식은 지구와 다르다

<쉬어>_Various Artists

by 김단

Randezvous!


우주에서 코앞에 있는 우주선을 따라잡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의 상식으로는 앞으로 속력을 높여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속력을 줄여서 낮은 궤도를 돌며 기회를 보다가, 적절한 시점에 다시 속력을 높여야 만날 수 있다. 이 간단한 궤도 역학 문제는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크다. 바로 ‘쉼’의 필요성이다.


당장은 불안하고 뒤처지는 것 같아도, 잠시 물러설 줄 알아야만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대표적으로 일과 공부가 그렇다. 수험생 시절 나는 공부 시간을 기록하는 앱을 썼다. 어플 속엔 공부시간 순위를 매기는 리더보드가 있었는데, 아침 9시쯤 들어가면 이미 서너 시간을 공부한 사람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경쟁심을 느껴 책을 펼쳤다. 동기 유발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 공부 시간 자체에 집착하게 되었다. 쉬는 시간과 잠을 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역효과였다. 오래 앉아 있어도 효율이 나지 않았고, 죄책감과 불안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다 놓아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 난 체크 리스트 방식의 계획을 선호하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면 미련 없이 손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든 일이든 결국 몸과 마음을 쓰는 일이기에, 과열된 상태에서 무리를 하면 시간만 쓰고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건 무조건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언제 집중하고 언제 쉴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지금 잠시 쉰다고 영원히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계속 발버둥 친다고 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속력을 줄여야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우주의 상식처럼, 우리는 때로 잠시 멈춤으로써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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