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_양희은, 김창기
나는 조금 남다른 사람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존경하는 롤모델을 한 명쯤은 두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어릴 적에는 모두 만화 속 슈퍼히어로를 좋아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관심사와 관련된 유명 인물을 마음속에 품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롤모델을 묻는다면, 나는 대충 위인의 이름을 빌려와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내가 사람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전에 따르면 존경이란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것’이라고 한다. 짧지만 참 어려운 말이다.
내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보따리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기준으로 정렬하기보다 스펙트럼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애초에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보고 내 안에 저장해 왔다.
그래서 내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연속형 분포에 가깝다. 물론 나에게도 존경할 만한 사람의 기준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이들은 그 기준 근처를 맴돌 뿐, 완벽히 일치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꼭 한 사람을 정해 "존경한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격이나 행위의 어떤 양식을 두고 존경한다고 말해도 충분하다. 나는 ‘순수 이성’을 존경한다. 칸트의 순수 이성처럼, 다른 맥락에서 벗어나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본능이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옳음과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선망한다.
때로는 자기 불편을 감수하고, 또 자신이 반대하는 것에는 단호히 선을 그을 수 있는 태도를 존경한다. 특정한 일에 능숙한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어른다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의 모습을 존경할 수 있도록 내 이상향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