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마라토너
인생은 마라톤이다.
그가 평소에 뛰는 코스는 32킬로미터다.
32킬로미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자로 따지면 몇 글자일까?
마라톤 풀코스가 42,195킬로미터니까 32킬로미터를 뛴다면 거의 3분의 2를 넘게 달리는 거다. 그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달린다. 비가와도 달리고, 눈이 와도 달린다. 슬퍼도 달리고 기뻐도 달린다. 돌아보면 더 열심히 달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만 사로잡혀 조금이라도 아늑하면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른다. 뒤에서 항상 쫒아오는 곰 때문일까? 어쨌든 그는 달린다.
배고픈 러너라서 싸구려 운동복은 신체 중요한 부위를 갉아 먹는다. 그래서 가슴 양쪽 튀어나온 곳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소중한 곳은 잘 잡아주는 속옷을 따로 입지만 과열되면 소용없다.
쓸린다. 속도를 심하게 내면 마찰로 인해 화상을 입는 것을 넘어 피까지 나기 마련인데 그래도 뛰어야 한다. 이런 외적인 문제는 사실 마라토너에게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술안주거리도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30킬로미터를 넘어서서 10킬로미터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다. 사람의 근육은 젖산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서서히 마비를 일으키고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근육이 젖산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마비가 온다. 더 이상 뛰거나 기능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과 기적을 믿는 자들은 그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한다.
한계를 느낄 때 진짜 승부가 펼쳐지고, 남은 10킬로미터에서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결국 월계수를 머리에 차지한다고 한다.
근데 이건 진짜 웃기는 소리다. 개소리다. 이미 젖산이 나와 버리면 그 근육은 더 이상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정신력? 그건 승리를 차지한 사람이 패배자들에게 남기는 신을 향한 거짓 찬사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42,195킬로미터를 원하는 시간 내에 뛸 수 있는 훈련을 꾸준히 하지 못한 선수는 그 시합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승리를 차지하는 선수는 42,195킬로미터를 그렇게 뛸 수 있는 몸을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다. 기적이란 것은 없다. 절대로 없다. 신도 없다.
그의 딸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6개월 동안 깨어나질 못하고 있다. 혼수상태다. 식물인간이다. 의사가 말했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깨어날 수도....
웃기는 소리다. 기적이란 게 어디 있어? 신이 어디 있어? 신이 존재한다면 나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웃기는 소리하지 마.
그는 철저하다. 신은 없다. 그 딴 거 없다. 오로지 내 척추 하나만 믿고 살아왔고, 사람 죽을 날도 다 정해져 있다. 그가 새벽을 열며 긴 도로를 뛸 때마다 생각하는 질문이다. 스스로 답을 내린다.
그는 7킬로마다 자신만의 영역을 확인한다. 7킬로를 30분 안에 뛰면 그가 가진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다. 이 모퉁이를 돌면 7킬로인데 그 다음 전봇대를 돌면 거기에서부터는 변수가 있다.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하는 사냥개가 목줄에 묶여 있는데 그가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짖어댄다. 그래서 그는 그 구간을 차라리 최종스퍼트 훈련 구간으로 인정해버렸다. 만약에 저 개가 목줄이 풀려 공격해오면 그것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니까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고 그 구간을 모든 힘을 다해 뛰는 것이다. 뒤를 쫒아오는 개 짖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다음 14킬로 구간을 넘어서면 공장폐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동물사료가 썩은 것처럼 코를 찌르는 독특한 악취를 풍겨낸다. 유독 그 구간만 그렇다. 그 구간에서는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다. 이런 변수들이 그의 기록을 방해한다. 변수들은 눈에 쉽게 보이고 어디에서든 나타나지만 신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냥 신이란 건 없다.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대비하고 살아가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그의 최고 기록은 3시간 5분이다.
5분을 넘어서면 일명 서브쓰리라고 일반인에게는 명예의 전당이다. 마라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뭐라고? 이게 뭐야? 풀코스를 3시간 안에 뛰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하면서 그저 그런 것이겠지 할 것이다. 하지만 마라토너에게는 엄청난 것이다.
당장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딸과 시간만 나면 밖에서 뛰어 다니고만 있는 남편을 반기지 않는 아내에게도 서브쓰리 달성이라는 목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말 중요한 과제이다. 인생의 숙제다.
그는 오늘 서울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안에 들어오는 서브쓰리를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훈련해 왔다. 그의 인생이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어긋났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보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뛰고 싶다. 살아오며 좋은 사람을 만났고 더 가깝게 더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런 것조차도 여의치 않다. 기계처럼 일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 그에게 남은 게 뭐가 있을까?
무작정 뛰는 것이다. 목표로 했던 그 시간 안에 들어오기 위해 그는 자신을 그렇게 혹독하게 몸을 만들고 가꾸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눈물이 나도 참고 외로워도 이겨내고 뛰고 또 뛰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신이 있나? 신이 있다면 내 딸이 저런 사고를 당하고 또 깨어나지도 못하고 내 와이프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나?
그가 42킬로를 넘어서서 결승선을 앞두고 있다. 195미터가 남았다. 이미 30킬로미터를 넘어설 때 손목시계를 보니 서브쓰리 달성은 어렵다는 걸 알아챘다. 또 실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200미터 저 구간을 지금 당장이라도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마지막 스퍼트를 끊으면 3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있다. 기록갱신이다. 누워 있는 딸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 아빠가 해냈어. 하지만 이미 젖산은 그의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무릎을 집어삼켰다. 더 이상은 말을 듣지도 않는다.
신이 있나? 이럴 때 나 이겨내라고 힘을 주는 특별한 존재가 진짜 있나? 웃기지.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내가 지금 왜 찾고 있는 거냐.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195킬로미터를 앞두고 뛰는 걸 멈춘다. 이미 끝났다. 그렇게 포기하고 절뚝절뚝 걷기 시작하는 그 때다.
“아빠, 뛰어!”
관중석에서 딸아이가 뛰어 나와 손을 잡아준다. 아이가 아빠의 지친 발걸음을 맞추어 뛰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지 아빠를 힘껏 잡아 이끌어준다.
“아, 뭐해? 아빠! 뛰라고!”
관중들 속에 아이 엄마가 보인다. 손을 흔든다. 단 한 번도 그의 마라톤을 응원하지 않았던 그의 아내다.
지금 이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는 걸까?
젖산이 더 이상 근육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못한다.
온몸의 근육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가 다시 뛰기 시작한다. 아니 뛰어진다. 쓸리고 또 쓸려 살이 다 마찰되어 벗겨진다. 숨이 헐떡 거린다. 폭발할 것만 같다. 그래도 뛴다. 결승선 통과 2시간 59분 24초. 서브쓰리 달성이다. 해냈다.
양팔을 쫙 펼치고, 어린 아이처럼 두 팔 가장 먼 곳까지 벌려본다. 모든 공기를 다 빨아 마신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입김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신이 있나? 마지막 힘은 누구의 힘이었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고맙다고 말했다.
그 때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의 딸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Fin
*그 날의 온도는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겐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