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존재하는 음악: 6

깊은 호흡으로 감정의 흐름을 담아내는 음악

by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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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 이전에, 감정이 있는 그대로 머물 공간을 여는 일이다. 우리는 앞선 글에서 말하지 않음으로 이야기하는 ‘정재형’, 결을 따라 흐르는 목소리 ‘김사월’, 시공간에 남겨진 감정의 잔향 ‘권순관’의 창작을 따라 음악 속 감정의 존재를 발견해 왔다. 이번 편은 호흡으로 창작자가 가진 감정을 유유히 흐르게 하는 음악과 함께 그 음악이 흐른 자리엔 무엇이 남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함께 나눌 예술가는 깊은 호흡으로 감정의 흐름을 만드는 가수 심규선이다.



깊은 호흡으로 감정의 흐름을 만드는 가수 – 심규선


음악에는 리듬, 가락, 화성, 형식, 셈여림, 빠르기, 음색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창작자는 이 요소들을 조합해 자신의 감정을 다양하게 요리하고, 가수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가창한다. 가수 심규선은 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결을 깊게 직조해 내는 예술가이다. 그녀는 특히 호흡에 주목한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들숨과 날숨, 그리고 호흡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떨림에 감정을 담아 노래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깊고 잔잔하게 이끌어간다. 특히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음악은 심규선(루시아)의 세 번째 정규 앨범 「Light & Shade Chapter 2」에 담긴 노래다.


이 세 번째 정규 앨범은 심규선의 음악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다. 그녀는 인생이란 기나긴 여행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진중한 메시지를 시작으로 이 앨범에 자신의 이야기와 철학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모든 음악을 통해 자기 감정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치유의 힘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음악을 감상하는 듣는 이 또한, 자기 스스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발견하도록 돕는다.



루시아는 자기 위안과 존재 증명을 위해 쓰고 부른 노래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고,
이내 좌절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흘려보내는 매개체로서
자신의 음악이 쓰여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Light & Shade Chapter 2」 앨범 소개 中 -



이러한 창작 철학이 담긴 그녀의 앨범 수록곡 중 마지막 곡 〈강〉은 그녀의 감정 표현 방식인 호흡이 짙게 드러나는 곡이다. 그녀의 목소리, 피아노 선율로 단출하게 표현된 이 곡은 노래의 크기를 키우기보다 깊이를 고르는 방식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흐름과 여백, 잔향으로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호흡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가진 호흡은 먼저 감정이 흘러갈 방향을 잡는다. 그 뒤, 목소리와 가사가 지닌 의미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때로는 넓고 느린 물살처럼 호흡을 늘리고, 때로는 여울치듯 짧게 끊으며 감정의 미세한 동요를 남긴다. 이 길고 짧음의 교차로 감정의 흐름과 머무름을 동시에 만든다. 강은 흘러가지만, 강가엔 흐름의 흔적이 그대로 남듯이 감정을 남긴다. 그리고 흐름 속에서 감정을 억지로 키우지 않는 대신, 호흡을 통해 마치 강처럼 더욱 깊고 넓게 만든다.


심규선은 〈강〉에서 ‘나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너의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 노래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강가’에 서 보라고 조용히 권한다. 그렇게 듣는 이는 ‘남’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와 닿는다. 노래 속에서 감정은 흘러가며 어느 지점에서 머무르고, 또 머물던 감정은 다시 흘러간다. 그리고 한순간 범람해 요동친다. 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때론 조금 덜 단정하고, 때론 조금 더 정직한 상태로 돌아와 자신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닿게 된다. 우리 자신이 자기 감정의 주인임을 느끼는 순간인 것이다.


그녀는 호흡과 함께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통해서도 강물과 같은 감정의 흐름을 표현한다. 서정적인 선율로 표현하는 잔잔한 시내와 같은 흐름을 시작으로 점점 넓어진 감정을 이야기해 나간다.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에 담긴 복합성을 탁류와 소용돌이가 생기듯 강한 저음과 분산화음으로 드러낸다. 이후 깊은 한숨과 함께 주제 선율의 반복으로 그녀가 가진 모든 감정을 바다로 흘러가는 하류의 강물처럼 쏟아낸다.



심규선 - 강(4대3 비율).jpg 〈심규선 - 강〉출처: 유튜브 채널 ‘심규선’



그녀의 곡에 담긴 깊은 울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남는 감정. 노래가 멎은 뒤에도 감정의 잔향은 잠시 뜨겁게 남는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녀의 강가가 아닌 나의 강가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조용히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 강에 흐르는 나의 감정의 흐름을 다시금 발견하며 ‘온전한 나’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녀의 음악을 듣는 지금, 이 순간. ‘나’로 시작해 흘러간 강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계속해서 무한히 흐르고 있다.


2025년 9월 23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