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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은행나무 빈집

by 박재옥


황금을 다 털어낸 교정의 오래된 은행나무는

독거노인 되어서 빈집을 지키고 있다

혼자 된 늙은 나무가 안쓰러워서 선생인 나는

교실 복도를 지나며 노인의 굽은 등 지켜보곤 하는데


염려와는 달리 노인은 마냥 쓸쓸한 일상을

일없이 견디고만 있지는 않다

심지 굳으신 분이라 앓은 신음 토해내지 않고,

묵묵히 빈집을 찾아드는 어린 것들의 거처가

되어주고 계신걸 자주 목격하곤 한다


시절을 다룰 줄 아는 연륜도 꽉 차서

잔가지 흔들어주는 찬바람이 연 꼬리처럼 매달려

미주알고주알 바깥세상 얘기를 들려주다 가고,

정처 없는 새 식구들 자욱하게 매달려

연무煙霧처럼 쉬었다 가기도 하니


들여다볼수록 혼자서 지키는 적적한 집이 아니다

수시로 방문객들 드나들어 심란함 붙을 사이 없고

가지에 매달린 적막 수시로 깨지기 일쑤니

잎사귀 아가들 손 흔들고 돌아올 봄까지

붐비는 사랑채가 되어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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