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이사온 지
이십 년 훌쩍 넘은 늙은 영산홍
오는 봄날, 그는 기력이 다했는지
베란다 구석에서 돌아누운 어름장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다
붉고 탐스러운 꽃송이로
해마다 기쁨 주었던 몸뚱이는 이제
가까스로 몇 송이 시든 유언만을 매달고 있다
일생일대의 깨달음을 간신히, 뭐라고
뭐라고 늙은 틀니처럼 웅얼거리고 있는 듯한
마지막 반짝거림 속에서
나는 그만 울컥한 시 한 줄을 읽고 간다
이번에 '마음보다 먼저 핀 꽃' 제3 시집을 시산맥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시 52편과 에세이 '80년대에서 온 편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글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