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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매(探梅)

by 박재옥


그러니까 매화다운 매화를 처음 본 것은 부안 개암사(開岩寺)에서였어 큰 절 내소사(來蘇寺)에서 사람에 치이다가 차 고삐 돌려 돌아가다 들린 길이었지 검은 망사 천 드리운 저녁, 절집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단내 품은 향내가 달려드는 거였어 저녁 밀물 들어오는 절 마당가에 잘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선박처럼 정박해 있더군 세월을 용트림하며 마디게 뻗어 올라간 묵은 등걸이더군 때마침 지나가는 행자승에게 수령을 물어보니 이 절 주지 스님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거기에 서 계셨다더군


한 때는 절정의 조선 여인네였을 늙은 매화나무가 내뿜는 향긋한 울림이 신라 청동종소리처럼 쟁쟁했어 귀가 다 먹먹해질 정도였다니까 이리 깊은 향내의 벼락은 난생 처음이었다니까 조선기생 매창(梅窓)의 말소리가 난분분난분분 들려오는 듯 했어 차 고삐 쥐고 쉼 없이 달려온 지친 나를 내려놓고서 한참을 나무 아래 취해 있었어 잘하면 조선 오백 년 저쪽의 우물 바닥에 가닿을 것도 같더군 바로 이것이 봄이면 매화 찾아 길 떠났던 조선 선비들이 끝끝내 마주했던 막다른 향내의 골목은 아니었을까 싶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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