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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세 가지 간극

by 박재옥


지진이 일어나자 오래된 아파트가 출렁거렸다

건물에 보이지 않는 틈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바퀴벌레가 틈입자처럼 기어 올라왔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아래층과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벌어졌다

외롭던 아파트가 더 외로워졌다


계단을 오르다가 뒤로 넘어져 몸이 출렁거렸다

허공에서 놀란 뼈와 뼈 사이가 벌어졌다

관절을 붙잡고 아우성치는 인대와 근육

그 사이로 사나운 바람이 들어오고

오한이 비집고 들어오고, 나태가 걸어 들어왔다

찰나의 거리가 영원처럼 멀어지자

뼈와 뼈 사이에 그리움이라는 금이 가버렸다


모임 중 지인이 급사하자 생과 사가 출렁거렸다

잘 나가던 모임이 갑자기 어색해지고,

살아있는 회원들 사이도 벌어졌다

그 사이로 잡다한 생각이 들어오고

사상이 비집고 들어오고, 반란이 걸어 들어왔다

관계와 관계가 앞뒤 문짝처럼 뒤틀리더니

바다처럼 막막한 슬픔이라는 간극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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