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에서 백암온천으로 가는 길
길게 늘어선 배롱나무 가로수가 불타고 있다
언제였던가, 이 길을 지나갔던 것은
십 년 전에도, 이십 년 전에도
이 길을 지나갔었다
그 때는 배롱나무 불꽃을
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었다
새빨간 배롱나무 불꽃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어서
다시 이 길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 위에서 놓쳐버린 것들
의식 없이 지나쳤지만
눈 여겨 봐야 했을 필연적인 장면들이
배롱나무 불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간발의 차이로 엇갈려 빗나갔을 운명들이
영양에서 백암온천 가는 길
배롱나무 가로수 붉은 소실점 너머에 두고 온
의미 없이 지나간 길들에 대한 아쉬움
젊은 날의 미련을 채워보려고
바람이 하늘의 불을 훔쳐다 꽃불을 피우듯
나신으로 타오르는 배롱나무 꽃불을 훔쳐서라도
내 몸에 화염을 피워보고 싶은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