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적당히 좀 합시다.
조선시대에 노비의 경우 주인이 대신 세금을 내주었는데, 이를 이용하기 위해 평민 신분임에도 스스로를 '노비'라 하고 다니자, 결국 국가는 노비도 직접 세금을 내는 것으로 법을 바꾸었다고 한다.
반면 머슴은 요즘처럼 급여를 받고 양반집 일을 도와주었던 사람으로, 요즘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현대판 머슴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의 월급쟁이도 결국 임금을 받고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국가로부터 받는 공무원이나, 기업으로부터 받는 직장인이나 구조는 동일하다.
한국의 기업 생태계를 보면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나뉘며, 그중 대기업은 대부분 재벌 오너 일가의 세습 체제 속에 경영이 운영된다.
중견기업이나 강소기업들조차 이제는 2세, 3세 경영으로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재벌 오너를 제외한 사장, 부사장을 포함한 임원과 직원들은 모두 '월급을 받는 머슴'의 범주 안에 있다.
조선시대에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누군가로부터 대가를 받고 일하는 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노동 형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 양반집의 행랑아범이나 집사처럼, 요즘은 임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생활을 하며 종종 '상머슴과 하머슴 차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임원은 재벌 오너와 일반 직원 사이의 경계선에 있지만, 사실 재벌 오너들인 경영진과 더 가까운 위치에 있고, 대부분의 대기업이 그러하듯 계약직이기에 당장 눈앞의 실적, 그리고 계약 연장을 위해 경영진의 눈에 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부패나 비리로 쫓겨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기 임원인사 때 하루아침에 집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송별회조차 없이...
사실 임원이 되려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하여 어렵게 오른 자리인 만큼 과잉충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부하직원들을 하대하는 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사람의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한 때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포부가 '남을 헐뜯고 밟고 올라가서 한자리하겠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항상 소신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지켜야 할 몇 가지, 혹은 단 한 가지 도리라도 마음속에 품고 산다면 남에게 비난을 받거나, 혹은 남에 눈에 눈물이 나는 행위는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래 버티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같은 월급쟁이로서, 과잉충성보다는 '정직한 실력'으로 버텨야 한다.
요즘은 40대 젊은 임원들이 많다.
아마도 세습으로 오너가 바뀌고 그들이 젊다 보니 그 아래 임원들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게 젊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젊다는 것이 결국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기에, 자신을 무장할 수 있는 무기로 '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부르짖는다.
그리고 말로는 '혁신 혁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오히려 이전에 내가 겪었던 나이 든 임원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자신이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이견만 있어도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으려고 한다.
옹졸하기는 또 얼마나 옹졸한지...
요즘 젊은 임원들, 영문 단축어로 Cxx로 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근 뉴스를 봐서 다들 아시겠지만, 그들도 참 가끔씩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가도 하는 행동들을 보면 세 살 아이보다도 옹졸하다는 생각이 들어 과연 저들이 수억 원씩의 연봉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에서 시작된 임원들의 고액 연봉은 한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겪은 미국의 임원들이 일부 성공사례만을 봐서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본 대기업의 한국 임원들은 과연 사원들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의 연봉을 받을만한 사람인가라고 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차라리 그 돈을 좀 더 혁신적이고 능력 있는 사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한다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임원들은 대기업 오너의 친위부대, 그것도 맹목적인 충성만을 지향하기에, 애초에 그런 혁신이나 지렛대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임원 자체가 될 수 없고, 조직에서 도태되어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가기 때문이다.
내 후배 중 한 명도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미국회사로 취업을 하여 가족과 떠나기도 하였는데, 그 친구가 장기간 미국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들은 바로는 정말 많은 능력자들이,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미국과 같은 나라도 떠날 준비를 그렇게들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가 참 어두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월급 받는 건 같으면서 과잉충성에 온갖 나쁜 짓은 다하고, 운칠기삼이라는 미명아래 실력보다는 아첨과 불법, 그리고 입에 발린 소리로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분들이 많아서 가끔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그리고 스스로를 '오너급'이라 착각한다.
한국 기업문화가 좀 더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재벌 오너 중심의 경영 구조와 그들의 친위부대인 임원들의 갑질문화부터 깨져야 한다.
그리고 친위의 대가로 많은 보수를 받는 문화도 개선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그런 시대는 올 것인가...
지금으로 봤을 때는 내가 노년이 되어도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변화의 바람으로는 세계일등인 대한민국에서 그런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