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치유기 9
현명하고 믿음직하던 남편이 점점 망가지고, 충동 제어를 하지 못하는 모습에 아내는 하염없이 속상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나를 치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내가 아내를 바라볼 때 늘 갖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런 아내는 나를 위해 더욱더 헌신적으로 나를 돌봐주고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아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던 나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들이 사춘기 시절에도 나를 마음고생을 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회사에 있는 몇몇 빌런들로 인해 나는 힘들어하며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아들은 대입 준비로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 한번 없는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그리고 이제 웬만한 상황은 다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성숙한 나이였기에 나의 병세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대입준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아마도 부모인 나의 병세로 아들은 더 많은 걱정과 마음의 짐을 짊어졌을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대학 입시에 합격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내가 아들을 위해 기여한 바는 많지 않았기에 미안한 마음이 기쁨과 교차하였다.
아들과 달리 아직 어린 딸은 늘 불안해하였다.
아빠가 집에 늦게 오는 날에는 화가 나서 왔을까 봐 늘 불안해하였고, 아내에게 늘 물어봤다고 한다.
또한 항상 내가 집에 들어설 때는 나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어쩌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내가 화가 풀릴 때까지 눈치를 보았다고 한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것이었다.
답이 없는 일상에 주기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약물에 의지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기억의 망각과 무너지는 나의 모습만 점점 늘어갈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아내도 결국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어렵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나의 형님들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나와 형님들은 서로 1~2시간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형님들은 내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내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주었다.
나는 충동적이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형님들께 의지하기도 하였고, 때론 화를 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때마다 형님들은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