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치유기 12
사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머리가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다.
생각도 집중해서 하지 않는 이상 정리도 잘 되지 않았고, 명확하게 뭔가를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하고 보름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도 회사 일을 잠시나마 물리적으로 잊을 수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고, 나는 현재 나의 병마가 회사 생활로 인해 나의 일상,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없었고, 오직 거의 하루의 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특히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후일 병원에서 진행한 검사에서도 역시 내 예상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나는 우선 회사 취업규칙을 찾아보았다.
업무 상 재해 관련된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인사팀장에게 들은 대답은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였다.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그렇지만 정 떨어지는 대답이었다.
사실 대기업에서 수년간 근무하면서, 조직이 얼마나 냉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한지 봐왔기에, 이런 대답을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본 사례만 해도 몇 가지가 있다.
전 직장에서 한 직원이 회사와 관련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배신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퇴사하게 된 사례 등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는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대기업 조직의 현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게 현실이 되니 그렇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병가 휴직자에게 3개월간 통상임금의 70%를 지급하였고, 나도 그 대상이 되어 후일 지급을 받았다.
만약 이때 인사팀장이 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와 회사에서 정식으로 질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것은 객관성이 떨어지기에 어렵지만, 병가 휴직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은 가능하다고 해주었다면, 나도 회사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실망을 하며 산재승인요청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사팀장의 다음 말은 더욱더 나를 힘들게 하면서, 분노에 차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