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통째로 젖을까 두려워
천둥을 몰고 오는 폭우는 피하지만,
감흥 없이 스미는 잔비는
어쩐지 서툰 이별의 뒷모습 같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피하고 싶지만
몸을 돌리고 나면
가슴 한 켠엔
의자 하나 말 없이 비어 있을 뿐.
축축한 옷자락은 달갑지 않지만
밤을 적시는 그 소리에
문득, 오래 닫아두었던 눈을 감는다.
편안한 아파트도
가두지 못하는
양철지붕의 어두운 울림,
그 빗소리 속에서
내 어린 날들이 기척을 내며 돌아선다.
어디에나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으리라.
그리고 끝내 알게 된다.
그 빈자리의 이름이
오래전, 나에게 붙어 있던 하나의 또 다른 나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