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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25화 유신의 끝자락(1)

영석은 태종이가 말한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판대의 신문을 사서 보기도 하고 TV 뉴스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요즘의 유신시대를 ‘언론의 암흑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보도 통제가 체계적이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영석이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혹시 태종이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언론은 너무나 조용했다. 그래서 태종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전화를 걸었더니 태종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지금 집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있으면 응암동 자기 집으로 와서 소주나 한잔 마시자고 했다. 오늘은 10월 25일이니 부산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한 지, 9일째 되는 날이다.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학생들의 데모로 인해 거의 모든 강좌가 휴강이라니 영석은 태종이네 집을 가기로 했다. 영석이는 성대 입구에서 84번 버스를 탄 후, 종각에서 내려 152번 버스로 갈아타고 태종이네 집으로 갔다.


영석은 1층에서 태종이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태종이 어머니는 영석이를 무척 반겼다.

“응! 우리 영석이 왔구나.”

고운 자태의 어머니가 반가워해주는 것도 감사한데, ‘우리’라는 말을 집어넣어 말씀해 주시니 더 정겹게 들리고 영석은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에게는 고교 동기 항렬이를 제외하고 이런 부잣집 친구를 둔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게다가 태종이는 항렬이네 보다 훨씬 더 부자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이 있는데 멋진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할 정도로 큰 집이기 때문에 이 집에 올 때마다 영석은 심적으로 위축되곤 한다.

“태종이가 우리 영석이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아이고, 어머니 태종이는 잘 생겼죠, 공부 잘하죠, 뭐가 부족해서 저 같은 놈과 비교하세요.”

“저놈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전교에서 1, 2등을 다투던 놈이야.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술, 담배를 하고, 제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하더니 재수를 하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 제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더 망가져버렸어. 자기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생각은 않고 매일 저 모양이니. 나 혼자 회사를 운영하는 게 너무 힘들어. 오늘도 몸이 안 좋아 이렇게 일찍 들어와 있잖니.”

“아이고, 엄마! 아들 흉은 그만 보세요. 영석아, 어서 2층으로 올라와. 그리고 밥은 우리가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2층 출입은 자제해 주세요.”

언제 내려왔는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태종이가 영석에게 어서 올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저 녀석은 항상 저런 식이라니까. 제 어미에게 내 집 2층에 올라가는 것을 자제해 달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지 않니?”

태종이 어머니가 영석의 동의를 구하는 표정을 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저놈이 딱 그런 놈이네요. 제가 혼내줄게요.”

영석은 장난기 섞인 웃음을 흘리며 태종이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태종이 여자 친구 진영이가 와 있었다.

“진영이는 어제 여기서 잤어.”

태종이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하니 진영이는 당황한 듯 태종이를 향해 손사래를 쳤지만, 태종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다.

“어머니가 1층에 계시는데 괜찮은 거야?”

영석은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가 없다.

“울 엄마는 진영이가 온 걸 모르시지. 쪽문을 통해 들어와서 2층 이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이용하면 엄마가 알 수가 없거든. 일하시는 아줌마는 내편이고.”

영석은 부자들은 다 이렇게 사는지, 아니면 태종이만 이런 삶을 사는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영석은 태종이가 진정으로 진영이를 사랑해서 엄마 몰래 이 방으로 데려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소주나 마시자.”

태종이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진로소주 1병을 꺼내왔다. 사실 영석이네 집에서는 냉장고 속에서 소주를 꺼내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영석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 30도였던 소주 도수가 25도까지 내려갔지만, 진로소주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하다. 진로소주는 최근 친근한 서민적 이미지의 만화가 고우영 화백과 유쾌하고 대중적인 이미지의 가수 박상규를 통해 ‘서민의 술’, ‘친근함’을 강조하고 있다.

진영이는 마치 자기 집인 양 소주잔과 안주를 챙겨서 테이블에 내놓았다.

“여기서 고기를 구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과자로 안주를 대신하세요.”

진영이가 가져온 과자는 새우깡 한 봉지, 에이스, 맛동산, 오징어 땅콩과 같은 것들이고 그 이외에 육포 나부랭이들이었다. 진영이는 지난번에도 영석이를 봤던 탓인지 스스럼없이 행동했다.


“오늘 왜 학교 안 온 거니?”

“학교 가봤자 수업도 안 하는데 뭘. 그리고 진영이와 있는 것이 학교 가는 일보다 훨씬 즐거운 걸.”

젊은 남녀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굳이 학교 수업까지 빠지면서, 그것도 엄마 몰래 같이 밤을 지새울 수 있다는 점은 영석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영석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도저히 태종이를 이해할 수 없는데, 태종이 엄마는 얼마나 속을 끓이고 계실까 걱정이 되었다.

이러한 태종의 모습은, ‘책임’과 ‘생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영석에게 가치관의 심각한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영석에게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거나, 수업을 제쳐두고 연인과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태종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사치이자 방종이다. 영석은 가난이라는 현실이 강제한 성실함과 인내를 미덕으로 알고 있는 반면에, 태종은 부(富)가 제공한 안전망 안에서 규범과 사회적 의무를 조롱하며 개인의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화 항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영석이 신문과 TV에서 그 진실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바로 그 순간, 태종은 학교나 시대의 목소리 대신 “진영이와 있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태종이가 '유신철폐'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시위를 남들보다 더 잘 안다는 점이다.

영석이가 볼 때, 이는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준 극도의 개인주의와 냉소주의를 상징하는 것 그 이상이다. 예를 들어, 영석은 유신 체제가 제공한 경제적 안정은 누릴지언정, 그 체제의 붕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시대적 동참은 태종이의 관심사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에도 발을 살짝 걸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태종은 시대의 격변 속에서 자신이 가진 자원의 이점을 오직 개인의 쾌락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에만 소모하는 풍요 속의 반항아만은 아니다. 영석은 그를 보며 자신의 가치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단면을 목격했고, 그것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춥고 습한 책임감과 태종이 누리는 무책임한 자유 사이에서 겪는 고통스러운 가치 충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태종이 역시 자기처럼 경계인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진영 씨는 태종이를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영석이는 둘의 관계가 너무 궁금하다는 듯이 진영에게 물었다.

“술집에서 만났어.”

태종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네 태종 씨가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 술 마시러 왔다가 만나게 된 거예요.”

“그러시군요.”

영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태종이가 혹시라도 한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돈으로 쉽게 구매하고 소모할 수 있는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경제적 우위를 이용해 타인의 궁핍함을 착취하고 통제하려 드는 전형적인 계층적 갑질은 아닐까? 그리고 태종이의 행위는 단순한 ‘대학생의 일탈’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이 낳은 도덕적 불평등, 정신적 좌초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쪽문을 통해 여자 친구 진영을 은밀히 들이고, 자신의 어머니의 2층 출입을 엄히 금하는 그의 행동은, 기성세대가 구축한 도덕적 통제와 질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려는 신세대의 자유의 선언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영석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태종이 네가 지난번에 말한 부마사태에 대해 알고 싶어서야. 신문이나 방송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정부가 보도 내용을 사전에 검열하고, 기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삭제하도록 ‘보도지침’을 언론사에 하달했으니, 일반인이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지금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 등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을 모른단 말이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지만...”

영석이가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설령 보도가 나가더라도, 시위의 성격은 ‘불순분자의 선동’이나 ‘일부 불량배와 양아치들의 소요’로 왜곡되어 보도하지. 이는 대규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주항쟁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정권의 의도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소식들을 듣는 거야?”

“내 사촌 형이 기자야.”

“부산과 마산에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이 선포되면서, 계엄군이 언론사에 직접 배치되어 보도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하더라. 기자들은 현장을 취재하는 것조차도 계엄군의 감시와 방해를 받고 있대.”

태종이가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데, 이는 평소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에 부산대 경제학과 정광민이라는 학생이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뿌리면서 시작된 거라더라.”

영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강제로 학도호국단 대표라는 명목으로 충남 아산에 있는 충무수련원에 들어가 세뇌 교육을 받았던 생각이 떠 올랐다. 열흘 동안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행해지는 유신 체제의 정당성 교육을 받은 결과, 어느새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던 생각이 났다.

영석이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세뇌 교육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비판적 사고 능력을 억압하는 것이다. 즉 주입된 신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도록 계속해서 교육받으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지배적인 서사에 도전하거나, 스스로 생각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언젠가 영석은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영석은 그런 세뇌 교육을 받다 보면 대안적인 관점이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하려는 의지가 줄어들어, 세계관이 자신이 세뇌당한 특정 이념이나 관점에 갇히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세뇌는 단순한 습관의 변화인 최면과 달리, 개인의 자아 구조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영석은 최근 극심해진 지역감정조차도 부모나 가까운 집단으로부터 학습되는 세뇌 교육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중앙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산일보나 국제신문, 그리고 부산지역 방송국 등 지역 언론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단 말이야?”

“시위가 최초로 일어난 것이 10월 16일인데, 그다음 날 거의 모든 언론이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는 거야. 그리고 10월 18일이 되어서야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이때부터 계엄사령부의 공식 발표 형태로 주요 신문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보도 내용은 주로 ”부산에 비상계엄선포“, ”지각없는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의 난폭한 행동으로 사회 혼란 조성“ 등 정부 입장을 대변하며 시위대를 비판하는 내용들뿐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부산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긴급조치 9호 등으로 인해 보도 자체가 엄격히 금지되거나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대. 시위대는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면서 KBS 부산방송국, 신문사 등을 공격하니 언론사의 입장도 참 어렵겠지.”

영석은 태종이의 탁월한 말솜씨에 놀라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진영의 얼굴은 그냥 경이롭다는 표정이었다. 영석이는 태종이를 보며 뜬금없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가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반민주의자는 부도덕해도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부도덕할 때는 반민주주의자들이 부도덕할 때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태종아, 나 네게 솔직한 질문을 하나 해도 돼?”

“그래. 뭔데?”

“내가 무슨 말을 묻더라도 화내지 말고 답해줘.”

“야 인마! 우린 친구잖아. 무슨 사설이 그리 길어.”

“솔직히 말해 나는 네가 도덕적인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해.”

영석이는 진영이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진영이가 있는 쪽을 애써 바라보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럼 난 부도덕한 놈이야. 인간 말종이지.”

태종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고,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런 네가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낯설어서 그래.”

“푸하하”

태종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그것 때문에 그토록 뜸을 들인 거야?"

태종이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도덕적 완벽함’을 요구하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는 절차와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 시스템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투표권과 발언권을 부여하며,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스템이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민주적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민주적 가치란 ‘평등’, ‘정의’, ‘투명성’, ‘책임’ 등 도덕적 덕목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따라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부도덕할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이 그들이 주장하는 고귀한 이상을 배반했다고 느끼며 더 큰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게 될 거야. 이를 ‘기대의 역설 (Paradox of Expectation)’이라고 해.”

태종이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정연한 설명에 영석이는 감탄을 했고. 진영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반민주의자는 부도덕해도 되는 거니?”

“당연히 아니지. 반민주주의자 역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사회적, 법적, 윤리적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니까.”

태종이는 아주 단호했다.

“그런데 반민주주의자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대중들은 처음에는 비난하다가도 바로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던데.”

영석이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반민주적 경향을 가진 집단은 종종 권위주의나 전체주의를 옹호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집단의 목표나 리더의 의지’를 우선시하지. 이러한 구조는 내부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기가 쉬워. 왜냐하면 대중은 이미 그들의 가치 체계에 ‘정의와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가 드러나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반응하며 비판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이중잣대’가 아니고, ‘기대 심리’와 ‘가치 전복’에 대한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야.”

영석은 도대체 태종이란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살짝 열등의식도 느꼈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주의자들은 반민주주의 자들에 비해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거지?”

“대중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기희생과 공정함’이라는 높은 도덕적 임계점을 설정하는 법이야. 결국 대중은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나 평등과 같은 가치가 워낙 숭고하니까 작은 부도덕도 그들의 모든 주장을 무효화시키는 ‘위선’으로 간주하게 되는 거야.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사익을 추구하거나 불공정했을 때, 대중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게 되지. 이것은 자신이 지지했던 이상이 개인의 부도덕으로 인해 훼손되었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이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는 훨씬 더 크고 격렬해질 수밖에 없어. 반면에 반민주적 혹은 권위주의적 인물에게는 대중이 이미 낮은 도덕적 임계점을 적용해. 아까 말한 대로 그들의 부도덕은 ‘이미 예상했던 일’로 치부되어 뉴스 가치가 떨어지거나, 심지어 지지층으로부터는 ‘목표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묵인되는 경우도 있어.”

“태종이 네 말대로라면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받는 비난은 그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높은 도덕적 책임을 스스로 자처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아이러니하고 고통스러운 ‘명예의 무게’라고 이해하면 되겠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이제 핵심을 찾았구먼.”

태종이는 엄지와 검지를 서로 부딪쳐 ‘딱’하는 소리를 내며 외쳤다.

”이러한 통제 속에서도 우리 사촌 형과 같은 일부 언론인들은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 보더라. 보도가 되지 않더라도 훗날 진실을 밝히는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시위의 전개 상황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기록한 취재 원고를 쓰고 있다는 거지.”

영석은 정희 누나가 언젠가 진실의 날이 올 때를 위해 ‘똥물투척사건’ 등 회사의 부조리를 기록하고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지금은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로 끝난 건가?”

“아니지. 10월 17일 새벽까지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시위가 계속되었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방식이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오후가 되자 동아대학교 학생들까지 합세해 남포동과 광복동 등 부산의 핵심 번화가로 진출했으며, 퇴근 시간과 맞물려 시위대는 수만 명의 시민 군중으로 불어났다는 거야. 이제 단순한 학생 운동을 넘어서 거리의 상인, 노동자, 일반 서민들까지 합류하여 공화당사 건물과 파출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며, 억압된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데, 광복동 거리는 자발적으로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찼고, 경찰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나 봐.”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거잖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10월 18일 0시를 기해 정부는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했다는 거야. 계엄군은 공수특전단 등 정예 병력을 앞세워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대. 그리고 10월 19일에는 불길이 인접 지역인 마산으로 옮겨 붙었다더라. 19일, 경남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시작되었고, 곧바로 마산 시민들이 합류했다고 들었어. 그래서 10월 20일 0시를 기해 마산 및 창원 지역에 위수령이 발동되었고, 군 병력이 투입되었대. 여기까지가 내가 사촌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야. 다른 데 가서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 우리 사촌 형도 그렇지만 우리들도 다치게 될 거야.”

“알았어. 걱정하지 마!”

영석이가 태종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이 10월 25일이니 21일부터 오늘까지 좀 진정이 된 건가?”

영석은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군과 경찰의 삼엄한 경계 및 진압으로 인해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나 보더라. 부산대와 경남대는 임시 휴교에 들어가고 학생들의 시내 진출이 통제되었으나, 산발적인 시위와 충돌이 이어지고 있고, 많은 수의 시민과 학생들이 연행되었단다. 결국 유신 체제의 강력한 진압 조치로 인해 시위의 기세가 꺾이며 표면적으로는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봐야겠지.”


“영석아, 넌 우리가 아직도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보니? 우리한테 ‘때’라는 게 오긴 올까? 이 땅에서 총칼 없이 과연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태종이가 소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영석에게 물었다.

“태종아! 내 생각도 너와 같아.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말을 너무 쉽게 넘길 수는 없지 않나? 지금 우리가 나서봤자, 저들이 원하는 ‘폭력 시위’의 명분만 주는 것 아닐까?”

영석은 솔직히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머리띠를 매고 ‘유신철폐’를 외치며 대성로를 달려 나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는자신에게 저들처럼 확고한 신념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그게 바로 문제야! ‘먹고사는 문제’ 뒤에 민주주의를 숨겨놓고, 자기들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게 저들의 수법 아닌가? 네 말대로 대중이 불안하다고? 불안하니까 더 알려야지! 진실을 알아야 뭐가 문제인지, 누구에게 맞서야 하는지 알 것 아닌가?”

“진실을 알리는 방법이 꼭 거리에 나가 피를 흘리는 것뿐인가? 대학 내에서 학문적 토론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책을 통해 사상을 전파하고,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 계몽하는 방식도 있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꾸준히, 뿌리 깊은 나무처럼 변화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섣부른 희생은 가족과 동지들에게 너무 큰 짐이 되는 건 아닐까?”

태종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뿌리 깊은 나무? 좋아.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땅이 불타는데, 뿌리만 깊으면 뭘 하나? 불 속에서 꽃을 피우려면, 누가 됐든 물을 길어 부어야 할 것 아냐? 너는 너무 안전한 곳에서만 싸우려고 해. 혁명은 온건한 방식으로는 오지 않아, 영석아. 결국 이 체제를 무너뜨릴 결정적인 계기를 누군가는 만들어야 해.”

“네 열정은 이해해. 하지만 그 ‘결정적인 계기’가 개인의 희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봐. 나는 조직의 힘과 연대를 믿어. 개인이 영웅이 되려 하기보다, 모두가 벽돌 한 장이 되어 거대한 벽을 쌓아 올리고, 그 벽이 완성될 때, 저들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거야. 그전까지는 체포와 고문을 당하지 않게 최대한 버티며 힘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닐까?”

태종이가 영석의 어깨를 잡았다.

“버티는 것도 좋지만, 피 흘리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가 과연 있었던가? 나는 분노가 곧 우리의 무기라고 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분노를 잠재워서는 안 돼.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 정권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해.”

“너 아까 내가 부도덕한 놈이라고 했지? 진영아! 우리 잠시 옆방으로 가자.”

태종이는 갑자기 TV 볼륨을 높이더니 진영이를 끌고 옆방으로 갔다.

내일은 종강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목교를 쓸 수 없는 점 이해바랍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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