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진짜이민)
작은 마을의 오래된 건물.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상담실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낡은 간판과 퀴퀴한 복도, 문 앞에 붙은 이름표 하나.
우리는 그 낯선 문을 열었다.
상담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그녀의 영어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다.
아이가 천천히 단어를 고르며 자기 마음을 설명했다.
그 모습이 조용히 달라져 있었다.
집에서 나와 대화할 때는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지던 아이가,
이곳에서는 울지 않았다.
울음 대신 문장을 만들었고, 그 문장은 곧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 되었다.
“Since when did you come to Germany?”
(언제 독일에 왔니?)
“Four months ago.”
(5개월 전이요.)
상담사의 눈길이 부드럽게 옮겨갔다.
“Does your mom look happy?”
(엄마는 행복해 보이니?)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No.”
(아니요.)
“Why?”
(왜?)
“Because… she didn’t come because she wanted to.
And she only suffers here.”
(원해서 온 게 아니고, 와서 고생만 하니까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가 그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다.
상담사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로 향했다.
“Are you happy?”
(당신은 행복하세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K를 바라봤다.
“Are you happy?”
(행복하세요?)
K는 단호하게 말했다.
“Yes, I’m happy.”
(네, 행복합니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K, 진짜야?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상담사는 노트를 덮으며 덧붙였다.
“뛰어내리고 싶었을 때 엄마에게 알린 건 잘한 거야.
또 그런 기분이 들면 엄마나 K에게 꼭 말하렴.
충동이 1부터 10까지 라면, 8 이상일 때는 응급실에 가야 해.”
마지막으로 상담사는 이 사실을 학교에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K와 나는 동시에 실망했다.
힘들게 잡은 약속이었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허무도 깊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이는 달랐다.
그는 상담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가 갸웃거렸다.
무엇이 그를 지탱해 준 걸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네 가지뿐이었다.
우리가 무시하지 않고 그를 상담실까지 데려왔다는 사실,
낯선 어른 앞에서 차분히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경험,
영어라는 언어가 감정을 걸러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낀 작은 뿌듯함.
우리에겐 허무였지만, 아이에겐 숨구멍이 열렸다.
그 차이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지적했듯,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단순한 사실을 외면해 왔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독일이민 #가족에세이 #심리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