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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다는 용기

2부(진짜이민)

by 김미현


“괜찮아?”

“응, 괜찮아.”


자동응답기처럼 내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늘 괜찮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살아오며 받은 상처, 상담사로서 지켜야 했던 비밀,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괜찮아’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그런데 12살 아이가 낯선 상담사 앞에서 말했다.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그 한마디가 내 안을 흔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아들을 위해 무언가 더 해주려고 늘 바쁘게 움직였다.

옷을 챙기고, 밥을 챙기고, 고민까지 대신 해결해 주려 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두니

나는 괜찮은 엄마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나는 나의 결핍을 아이에게 채워주려 했던 것이다.


‘너는 이런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귀하게 대접했다.

어린 시절 내가 갖지 못했던 엄마를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내 만족이지, 아이의 성장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아들은 자기주장이 뚜렷한 아이였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래서 나는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내 곁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살고 싶지 않아.”


나는 더 열심히 원인을 찾았다.

자존감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심리학 자료를 밤새 뒤졌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

아이를 더 도와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건,

내가 나를 먼저 돌보는 일이었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도 함께 흔들린다는 단순한 진실.

파도 속에서는 먼저 몸의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 옆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작은 일부터 달리 보기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는 일, 밥을 짓는 일,

설거지한 그릇을 제자리에 두는 일.

라면을 끓이고, 계란을 부치는 일.

마트에서 엄마의 부탁대로 물건을 찾아오는 일.

그런 것들을 아이가 직접 해보도록 두었다.


“엄마, 나 혼자 했어!”

“우와! 축하해.”


예전 같았으면 내가 대신했을 일들.

그것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큰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작은 성취감이 아이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 모든 깨달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인정의 순간,

아이와 나는 동시에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아이는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씩 얻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존중하며 자라나고 있다.




#치유에세이 #부모성장기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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