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진짜이민)
“엄마, 다비드 집에 가도 돼?”
학교가 끝난 시간, 아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가도 되지.”
즉흥적으로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가는 건 독일에 와서 처음이었다.
한국이었다면 학교 근처, 걸어서 10분 거리 아파트 단지 안 친구 집이었을 텐데, 여기는 달랐다.
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도착하는 곳.
학교와 곧장 연결되는 노선도 없어 돌아올 때는 트램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나에겐 아득했고, 아들에겐 도전의 길이었다.
나는 또다시 ‘걱정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혹시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버스를 잘못 타면 어떻게 하지?’
‘독일어도 아직 서툰데, 혼자 물어볼 수 있을까?’
아이는 태연했다.
“응. 다녀올게.”
짧은 말속에 묘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몇 시간 뒤, 메시지가 왔다.
“엄마, 이제 집에 가려고. 재밌게 놀았어.”
“그래, 조심히 와.”
잠시 후 또 알림음이 울렸다.
“엄마, 잘못 탔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휴대폰을 쥔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
익숙한 불안이 또다시 몰려왔다.
“거기가 어디야? 엄마가 데리러 갈게.”
잠시 답이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메시지.
“아니야, 엄마. 내가 해볼게.”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 채 거실을 서성였다.
다시 문자를 보낼까 망설였지만 꾹 참았다.
아들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엄마, 내가 해볼게.”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흘렀다.
당장이라도 데리러 가고 싶었지만,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드디어 진동음.
“엄마, 제대로 탔어. 어떤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확인했어. 이제 잘 가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 한 줄이 눈앞에서 빛났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 우리 아들이 스스로 해냈구나.’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대단하다, 정말 잘했어, 혼자 독일에서 이렇게 길을 찾아오다니, 기특하다…’
그러나 다 삼켰다.
대신 짧게 보냈다.
“축하해. 조심히 와. :)”
그날 밤, 나는 알았다.
아이가 혼자 길을 찾아온 건 단순한 귀가가 아니었다.
그건 자기 힘으로 세상을 통과한 첫 경험이었다.
엄마가 손을 뻗어 구해주지 않아도, 묻고 확인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아이의 성장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참아낸 만큼, 아이는 한 걸음 더 자라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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