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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 서로를 끌어올리다

2부 진짜이민

by 김미현


독일 학교에는 수영 수업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과목이었다.

아들은 수영을 못했다.


학교에서는 따로 배워서 수업에 참여하길 바랐다.

조건은 단순히 물에 뜨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들 속도를 맞춰 50미터 레인을 몇 바퀴는 돌아야 했다.


나는 물 공포증이 있었다.

K가 다행히 수영을 잘했기에 아들은 K에게 배우기로 했다.

우리 셋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내겐 그 순간조차 버거웠다.

새로운 언어, 낯선 교육 과정, 갑자기 등장한 플루트 수업,

그리고 이제는 수영까지.

‘열두 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런데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해내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보다 낫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들은 한국에서처럼 수영 바지에 래시가드를 입었다.

그런데 안전요원이 다가와 말했다.

“래시가드는 벗어야 합니다.”


아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팽팽한 신경전.

안전요원은 원리 원칙의 사람이었다.

결국 아들은 입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 아들은 서럽게 울었다.

나는 야속했다.

‘그냥 벗지, 그깟 옷 하나 때문에…’


하지만 곧 알았다.

아들이 자기 몸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코로나 시절 급격히 불었다가 빠진 몸.

아직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옷을 다 벗는 게 싫어.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소년의 고백이었다.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의 세상은 내 눈과 달랐다.




몇 주 뒤, 아들이 불쑥 말했다.

“엄마, 다시 수영장 가고 싶어.”


이번엔 스스로 래시가드를 벗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K와 나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날부터 아들은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어느 날, K가 일 때문에 빠지게 되었다.

아들은 그래도 가고 싶어 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아우토반(독일의 고속도로) 위,

몇 번의 아찔한 순간을 지나 간신히 도착했다.




물속에서 아들이 나를 돌아봤다.

“엄마, 내 손 잡아. 나를 따라와.”


수영을 무서워하는 내게 아들은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 팔을 벌리고, 물속에서 가로로 흔들어봐.

그리고 발은 조금씩 위로 점프하는 것처럼 해봐.”


“이렇게?”


“응, 엄마가 닭이 되었다고 생각해 봐. 날개를 퍼덕퍼덕거리는거야. “


“우와… 대박. 나 조금 떴어! 진짜 신기해.”


아들은 웃었다.

“맞아. 엄마 잘하네.




잠시 후, 아들은 말했다.

“엄마, 나 한 바퀴 돌고 올게.”


물 위를 가르는 아들의 뒷모습이 멀어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약속대로 돌아온 아들이 외쳤다.


“엄마, 봤지?”


“응, 봤어. 진짜 멋지더라.”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어.”


“봤어. 네가 너를 뛰어넘었네. 진짜.

우와! “




그날 나는 용기를 냈다.

바를 붙잡고 몸을 눕혔다.

귀가 물에 잠기고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끝내 물 위에 몸을 띄웠다.


아들이 환호했다.

“엄마, 대단해! 축하해!”


나는 그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아들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아들은 내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물 위에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서로의 지지자가 되어, 서로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날, 나는 생애 처음 배영을 성공했다.

그리고 아들은 처음으로, 엄마를 물 위로 이끌어주었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의 기록이다.

아이의 여정을 쓰며 나는 나를 다시 배웠고,

사랑이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머무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마음은 통했다.

그 믿음이 나를 버티게 했다.

지금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지만, 그 안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도 묻는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숨이 되길.’





#모자성장기 #용기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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