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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저씨의 가방은 무겁다

by 김미현


우리 집 괴산아저씨는 참 묘한 사람이다.

충청도 사람인데 경상도 네이티브 다 되어버렸다.

시트콤 같은 이 남자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 한다.


이 아저씨는 졸지에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다.


고놈의 입이 방정이었다.

아들이 어릴 때는 집돌이 기질이 워낙 강했는데,

괴산아저씨는 그런 아들에게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장난이었는지 모를 말을 이따금 했다.


“아들, 독일 가서 공부해 봐. K 따라가믄 되겠네~!

거 가서 공부하고, 이슬람 기름나라 여자를 딱 꼬시는 거라.

아빠 많은 거 안 바란데이. 딱 람보르기니 한 개만 사주면 되는 거라.”


그런 실없는 농담을 해대도 아들은 꿈쩍도 안 했으니,

그때는 설마설마했을 거다.


그런데 우주가 그 아저씨를 어여삐 보신 걸까?

“오냐, 니 소원을 들어주마!”

그렇게 괴산아저씨의 장난스러운 말은

고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 괴산아저씨는 한국 땅에 혼자 산다.

기러기 아빠라고 직장에 소문이 났다.

그래도 사람이 좋고 성실해서

직장 동료들은 그의 장기 휴가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집 괴산아저씨는 똥꼬 발랄 유쾌한 쾌남이다.



아저씨가 또 독일에 왔다.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우리에게 왔다.


사다 달라는 것들은 덤이요,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더 많이 사 왔다.


“에헤이, 이거 여기도 다 팔아여. 뭐가 이래 많노.

에헤이, 그러이 가방 무게가 초과하지. 못 산다, 고마마.”


“맞나? 내 몰랐지.”

“모르긴 뭘 모르노. 같이 아시아 마트 갔었자네, 저번에.”


그렇다.

우리 집 괴산아저씨는 과자 하나를 사다 달라하면

한 봉지를 사다 안기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괴산아저씨를 보며,

“아이고, 아이고.”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래, 한 개만 정 없이 달랑 사 오는 것보다야 낫겠지.’


괴산아저씨는 짐가방을 척 풀더니

우리 집 독일인 K에게 제일 먼저 홍삼과 잇몸약 인*돌을 건넨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수면바지를 안기고,

내가 부탁했던 스티커, 편지지 같은 작은 것들을 꺼낸다.


자기 취향껏 사온 한국 음식들은

가방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의 가방이 늘 무거운 이유였다.

본인만 모른다.

자기 가방이 왜 무거운지.


그게,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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