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빛이 붉게 내려앉은 동네 골목.
아빠와 아들은 또다시 축구 연습을 하러 나섰다. 사흘째였다.
탕—탕—.
아들은 축구공을 농구공처럼 바닥에 튕기며 앞서갔고,
아저씨는 그걸 받아 위로 던졌다 받았다 묘기를 부리면서
입으로는 또 축구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멀티플레이어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축구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골목길 옆 집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을 잡고 있는 손이 먼저 보이고, 아이 얼굴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 위로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 하나까지—
작은 얼굴들이 네 개의 작은 탑을 만들었다.
깜빡깜빡거리는 눈동자 여덟 개.
“쟈들 뭐꼬? 뭐하노?
4층 탑이가?
에헤이, 뭐꼬?
온다-와-.
우짜노, 이거?”
우다다 쿵—.
쏟아져 나오듯 달려온 아이들 중 하나가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랑 축구 같이 찰래?”
소년과 소녀가 뒤섞인 동네 축구단이었다.
우리 아이보다 한두 살쯤 어려 보였다.
나는 순간 한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아저씨와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을 그 모습 말이다.
지난 이틀 동안 축구장에서 잠깐 얼굴을 비춘 인연이 다인데,
어떻게 저렇게 순수하게 기다릴 수가 있을까.
독일의 또 다른 면을 본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아이 앞에 우르르 모여 서서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아들은 잠깐 멈칫하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저씨는 아이들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다 자기 자식들인 듯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야들이 지금 뭐라카는기고? 같이 놀자는 기가?”
아들에게 통역을 해달라고 묻는 질문이었지만
벌써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아저씨였다.
아이들 네 명이 앞장서고,
그 뒤를 아들과 아저씨가 따라 걸었다.
작은 행렬처럼 줄지어 축구장 안으로 들어서는데, 저녁 햇살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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