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가짜이민)
학교 문제에 작은 돌파구가 보이자,
마음이 잠시 놓였다.
‘그래, 이제 집만 구하면 되겠구나.’
희망이 보였다.
그래서 그다음 날은 특별한 계획 대신,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의 즉흥적인 선택은 트램이었고, 마침 우리 앞에 딱 멈췄는데, 앗! 에어컨이 없을 줄이야.
한여름 뜨거운 공기가 그대로 트램을 채우고 있었고, 독일 사람들은 작은 창문만 열어둔 채 태연했다.
나만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미 출발한 트램이라 내리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라고 우리끼리 키득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창문 밖으로는 엽서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붉은 지붕들이 이어졌다.
광장 한가운데는 시인을 기리는 쉴러(Friedrich Schiller)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고, 그 곁에는 가지각색의 팬지꽃으로 정성스럽게 가꿔진 공원이 펼쳐졌다.
멀리로는 첨탑이 우아하게 솟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맞은편 노인에게는 이런 풍경이 일상이다 보니, 그는 신문에만 고개를 박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곧.
네모나고 빛바랜 건물들, 낡은 캔버스 위에 덧칠한 듯 단조로운 들판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매력이 사라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실망이 새어 나왔다.
“예쁜 건 다 끝났네. 아까 거긴 참 좋았는데…”
내 말에도 아이는 대꾸 없이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엄마, 그 학교… 혹시 안 받아주면 어쩌지?”
나는 속으로 ‘그러게 어쩌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고 중얼거렸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아들의 불안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의 마음이 저렇게 어지러운데.
설상가상으로 햇빛은 유독 아들에게만 드잡이를 하는 것 같아서 애가 탔다.
그러다 다행히 다른 승객이 내려 빈자리가 생겼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옮겼고, 아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 여기가 덜 더워.”
아들이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
내가 한 번 더 손짓을 하자, 아들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참견하는 엄마가 싫지만, 자꾸 손짓을 하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알았어, 이번만 들어줄게. 제발 그만 좀 해.’
그런 표정으로 마지못해 일어섰다.
바로 그 순간, 트램이 곡선을 돌았다.
휘청—
“쿵!”
철제 모서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순간 트램 안의 모든 소음이 멎은 듯했다.
아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눈빛으로 나를 쏘아 올렸다.
아픔과 원망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 눈길은 말보다 날카로웠다.
내 가슴은 깊숙이 찔렸고,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괜히 옮기라고 했어. 그냥 두었으면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숙소로 향하는 또 다른 트램 안.
우리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는 맥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 사이에는 차갑고 무거운 공기만 흘렀다.
광장에 내렸을 때도 아들은 서둘러 앞질러 걸어가 버렸고, 나는 그 아이의 뒤통수만 보며 따라 걸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뒤통수에도 표정이 있다는 걸.
잠시 걷던 아들은 이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이미 그 뒷모습을 보며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괜히 자리를 옮기라고 해서 네가 다쳤어.
너를 다치게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아들은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늘 태산같이 씩씩하던 엄마가 울고 있었으니까.
눈이 동그래졌다가, 곧 울 듯 웃을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언제 화를 멈춰야 할지 몰랐던 아들에게,
엄마의 눈물은 아마도 멈춤의 신호가 되었던 것 같다.
아들과 나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 나도 미안해.”
순간 광장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 모자는 단 둘만의 조용한 섬 위에 있었다.
낯선 독일 땅.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방인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여독을 풀었다.
그날의 화해는,
우리가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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